저녁을 먹고 소화도 시킬겸 해서 파주출판단지 안에 자리한 아웃렛 대단지를 찾았다. 사람 구경 간판 구경 날씨 구경하기의 재미가 쏠쏠하던 찰나 길게 늘어선 사람띠를 목격했다. 손부채를 연신 흔들어대며 제 차례를 고대하는 그들은 프라다 매장에 들어가 쇼핑을 하려는 일명 고객들이었던 거다.
줄이 어찌나 길던지 중간을 뚝 끊어 사람들이 오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음에도 그 누구 하나 항의하는 자 없었다. 줄의 끝을 몰라 중간에 끼어들었다가 단정히 양복 차려입고 귀에 무선기 낀 남자들에 의해 뒷줄로 물러서야 했던 여성들 또한 충분히 무안했을 법도 한데 아 네네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 쓴소리 한 번을 못 내더란 말이다.
고객은 왕이라더니 고객이 신하되는 풍경, 가게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들의 손과 손에 잔뜩 들려 있는 로고 그려진 쇼핑백을 보면서 나는 절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나 역시 저들처럼 만족스러운 미소로 매장을 빠져 나온 적 있었건만 갑자기 애국하는 심정이 됐던 건 집 근처 1층 상가에서 김창숙 부띠끄 간판 아래 헐값에 팔리고 있던 옷들을 보아서였다.
왜 우리 이름을 단 옷들은 구두는 가방은 전 세계 사람들의 부름을 받기 힘든가. 우리 이름이 발음하기 힘들어서? 이세이 미야케와 같은 일본의 유명 디자이너의 이름은 뭐 쉬운가? 비교적 널리 알려진 앙드레 김도 김봉남으로 라벨단 것이 아니니, 우리 작명 문화부터 변해야 할 때가 온 건 아닐는지.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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