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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View/ 횃대 위 낮잠·모래목욕… 복지농장 닭들의 '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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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View/ 횃대 위 낮잠·모래목욕… 복지농장 닭들의 '보은'

입력
2012.08.2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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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키우고 있는 녀석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닭들입니다."

충북 제천시 백운면 모정리 야산 중턱에서 산란계 1만 마리를 키우는 장영광 사장은 닭들을 보며 뿌듯한 표정으로 농장을 소개했다. '왜 저렇게 자신감이 넘칠까' 호기심을 지닌 채 농장을 둘러본 결과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닭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문외한이 봐도 농장의 닭들은 활력이 넘쳐 보였다.

통상적인 밀식 양계장은 닭 한마리당 A4용지 3분의 1 면적의 좁은 우리에 수많은 닭들이 갇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 달걀을 생산한다. 하지만 이곳 양계장은 닭들이 본능을 충분히 발산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양계장안에 들어서자 닭들이 도망가기는커녕 먹이를 주는 줄 알고 졸졸 따라다니면서 구두를 덮은 위생용 비닐을 수시로 쪼아댔다. 수탉과 암탉 모두 볏과 깃털 색깔이 선명하고 윤기가 나 자연스럽게 쓰다듬게 된다.

우선 홰(닭들이 놀거나 잠자기 위해 올라가 있는 나무)위에 수탉들이 늠름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시골 할아버지집 닭장의 옛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홰는 닭들의 놀이공간이자 잠자리로 중요한 기능을 한다. 양계장에 홰를 설치한 이후 닭들이 홰에서 잠을 자면서 계사 바닥에 알을 낳는 비율이 설치 이전 60%에서 5%대로 줄었다. 대신 닭들은 2개 층에 마련된 산란장에서 건강한 달걀을 낳아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위생적으로 수집할 수 있게 됐다. 장 사장이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을 위해 시설을 개선하면서 가장 만족스럽게 여기는 것도 홰를 설치한 것이다. 홰 설치 후 3일 정도 닭들에게 홰에 올라가도록 훈련시키자 이후 닭들이 대부분 홰에서 잠을 잔다. 질퍽해지기 쉬운 땅바닥에서 자는 것보다 훨씬 위생적이어서 발병률도 크게 줄었다.

산란계들은 모이를 먹고 나면 계사 바닥에 깔린 깔집을 판 뒤 몸을 파묻어 모래목욕을 한다. 장 사장은 "닭들은 모래목욕을 통해 몸에 묻은 오물과 기생충을 없애기 때문에 항생제를 적게 써도 닭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홰 위에 올라가 있던 닭이 똥을 싸자 밑에 있던 다른 닭에게 떨어지는 모습에 눈길이 간다. 이를 본 장 사장이 "건강한 닭들은 날개 짓과 모래목욕을 통해 항상 몸을 깨끗하게 유지하니 괜찮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똥이 묻은 암탉은 날개짓을 하며 자신의 몸에 묻은 오물을 금방 털어냈다. 장 사장은 "이 양계장의 닭들이 사람으로 치면 20대 초반 청년"이라고 말한다. 수탉과 암탉의 비율은 정확히 1대 15를 유지한다. 비율이 이보다 낮으면 경제성이 떨어지고, 더 높아지면 수정률이 낮아져 무정란 비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장 사장은 지난달 12일 동물복지농장 인증을 받았지만 이미 2년 전부터 정부의 동물복지 인증 농장 못지 않은 기준으로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2010년 초까지 서울에서 주유소를 경영하다 제천으로 내려온 장 사장은 동료 한 명과 함께 양계장을 시작했다. 장 사장은 농장경영 초기부터 국내 동물복지 선도기업인 풀무원과 계약을 맺고 일반 밀식농장과는 다르게 운영해 왔다. 풀무원은 양계장 1㎡당 5마리를 키우도록 요구해 정부 동물복지농장 인증 기준인 1㎡당 9마리(권장 기준 ㎡당 7마리)보다 훨씬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이번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을 받을 때에도 홰를 설치한 것 외에 크게 변화한 것은 없었다.

과연 이렇게 투자해도 이윤이 날까. 장 사장은 "일반 밀식 양계장은 닭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달걀의 상품성이 떨어지고, 집단폐사의 확률도 높다"는 말로 돌려 설명했다. 아무래도 동물복지농장에서 생산한 달걀은 일반달걀에 비해 비싸 아직 잘 팔리지 않는다. 이달 초부터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한 이마트의 경우 동물복지 달걀 매출액 비중은 1.5%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아직 스트레스 없이 자란 축산물이 영양학적으로 더 뛰어나다는 점을 명확히 입증한 과학적 연구 결과도 없다.

그러나 장 사장의 동물복지농장에 대한 신념은 확고하다. "가축이 스트레스 적게 받고 자란다면 그렇지 못한 가축보다 건강한 달걀이나 고기를 제공하는 것이 당연하고 이렇게 생산된 축산물이 다소 비싸더라도 소비자들이 믿고 소비한다면 가족의 건강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마트 관계자도 "최근 젊은 주부들을 중심으로 동물복지 축산물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조금 더 입소문이 나면 판매액이 늘 것으로 기대한다"고 희망감을 내비쳤다.

깨어 있는 농장주와 현명한 소비자들이 동물복지를 중시하는 사육 방식과 착한 소비를 결합시키면서 스트레스 없는 축산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제천=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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