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푸세'서 경제민주화로 좌클릭… "배경 설명 부족" 비판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18대 대선에 나서면서 제시한 정책 가운데 2007년과 비교할 때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경제 정책 방향이다. 2007년 대선 도전 당시 박 후보는 핵심 공약으로'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자)를 내세움으로써 성장에 방점을 두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요즘 박 후보는 경제민주화라는 대전제 아래 성장과 분배(복지)의 조화를 주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경제 정책 기조가 급회전하고 '좌클릭'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배경에 대한 뚜렷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박 후보는 최근 "우선 세금을 줄인다는 것은 세율을 줄이겠다는 것으로 그 당시(2007년) 워낙 경기가 침체돼 있어서 중요한 정책이었다"며 "규제를 푸는 것도 경제적 지배력 남용에 대한 규제가 아닌 쓸데 없는 규제를 풀겠다는 뜻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치가 실행돼야만 억울한 사람이 없는 것 아니냐"며 "이런 의미에서 경제민주화와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박 후보가 현재까지 내비친 경제민주화 내용을 보면 우선 신규 순환출자 금지에 대해서는 찬성 입장을 내비쳤다. 반면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에 대해서는"실효성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을 뿐 아니라 비용도 많이 든다"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또 금융소득 및 대주주의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 강화에는 찬성했지만 재벌세 신설과 법인세 인상에는 반대했다.
즉 재벌의 지배구조 자체는 건드리지 않은 채 시장지배력 남용 등을 규제함으로써 시장 질서를 공정하게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박 후보는 최근 수위 높은 경제민주화 법안을 내고 있는 당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야당과 손잡고 법안을 추진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내 주장을 관철시키는 게 최고라는 건 국익을 생각하지 않는 자세"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금 야당이 주장하는 경제민주화론과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내용은 다른데 그걸 섞어서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출자총액제한제도가 폐지된 이후 재벌들이 계열사를 무분별하게 확장하고 빵집 같은 중소기업들의 영역까지 침범한 것이 사실"이라며 "(경제민주화를 위해) 상징적 차원에서라도 출총제 폐지로 인해 생긴 재벌들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제어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 교수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법인세 부담이 크지 않은 현실에서 법인세를 낮추면서 재원이 많이 소요되는 복지 정책을 실현하겠다는 것은 신뢰성을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 각론을 둘러싼 친박계 내부의 의견 차이도 문제이지만 이한구 원내대표와 최경환 의원 등 당내 경제성장 중시론자들의 반발을 어떻게 수렴할지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난해 말 박 후보가 비상대책위원장 취임 이후 당헌ㆍ당규 개정 등을 통해 경제민주화론을 제기함으로써 야당과의 정책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됐다는 평가가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박 후보는 2010년 사회보장기본법 개정 공청회를 통해 첫 정책 구상으로 복지 분야 청사진을 내세우며 정치권의 복지 논쟁에 불을 댕겼을 만큼 복지 정책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박 후보의 복지 정책은 서비스가 필요한 국민들에게 정부가 생애주기를 따라가며 선제적으로 개입하는'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서비스'모델을 지향하고 있다. 이와 관련, 박 후보는 0~ 5세 무상 보육과 4대 중증질환 100% 국가 책임, 노인근로장려세제와 자녀장려세제 도입 등을 제시했다.
일자리 정책에 있어서는 고용에만 머무르지 않고 약자를 위한 복지를 결합시킨 개념인'고용복지'를 강조하고 있다. 박 후보는 지난해 고용 세미나에서 ▦근로 능력이 없는 국민은 정부가 책임지고 ▦국민이 일자리를 얻는 데 지원을 받도록 하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빈곤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복지 정책과 고용 정책의 연계를 강화하며 ▦고용 및 복지 제도는 수요자 맞춤형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5개 원칙을 제시했다.
하지만 복지나 일자리 정책 실현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재원 마련이다. 일단 박 후보 측 안종범 의원은"9월 중 종합적인 재원 마련 방안을 내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 대북 정책의 핵심은 '신뢰와 균형'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구상하고 있는 대북 정책의 키워드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이다. 이는 박 후보가 지난 2월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 밝힌 개념으로 북한의 잘못에 대해선 벌을 주고, 잘했을 때는 상을 줘서 남북 간 신뢰의 토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의 포용 정책이나 이명박 정부의 압박 정책이 아닌 '제3의 길'인 셈이다.
박 후보는 지난해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9ㆍ10월호 기고문을 통해 '신뢰'와 '균형'을 키워드로 하는 외교안보 정책 구상을 제시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이러한 구상을 새로운 대북 정책으로 구체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박 후보는 당시 기고문에서 신뢰 외교에 대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항만, 철도와 같은 인프라만으로는 안 되고 신뢰, 원칙과 같은 사회적 자본이 필요하다"며 "힘의 논리로만 부족하므로 외교에서도 상호 신뢰를 우선할 때 중장기적인 상생 협력이 가능하고 국가 간에 더 큰 이익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박 후보는 이를 위해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발표한 6ㆍ15 공동선언, 10ㆍ4 선언도 존중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재정이 많이 소요되는 10 ∙4 선언에 대해서는 일부 조정 필요성을 거론했다. 박 후보는 남북이 기존 약속을 지키는 것이 신뢰 회복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 같은 기조는 강경한 대북 상호주의를 견지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과 뚜렷이 구별된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 초기에 "10ㆍ4 선언을 이행하려면 14조원이 든다"며 부정적 태도를 보였고, 그 뒤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 이후 남북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박 후보는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남북 교역 등을 전면 중단한 '5ㆍ24 조치' 해제 문제에 대해서도 "전쟁 중에도 대화는 필요하다"며 "무책임하게 해제하면 안 되지만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이야기해 볼 필요는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정치 상황과 관계 없이 인도적ㆍ호혜적 교류 사업은 지속돼야 한다는 박 후보의 주장도 현정부의 정책과 다른 기류로 볼 수 있다.
박 후보 대북 정책의 또 다른 축은 '균형'이다. 박 후보는 이에 대해 "유화정책으로 갈 때는 대화와 협력은 강화되지만 원칙을 깨뜨리는 경우가 생기고, 반면 강경 쪽으로 가면 대북 정책에서 유연성이 떨어진다"며 "균형 정책은 강ㆍ온의 중간이 아니라 각 정책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받아들이면서 통합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박 후보의 외교안보 정책 전문가는 "김대중ㆍ노무현, 이명박 정부까지 과거 15년 간의 공과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그 교훈 위에서 국가 이익에 맞춰 균형을 잡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박 후보의 대북 정책에 대해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론도 적지 않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박 후보의 대북 정책은 좋게 말해 과거 정부의 단점들만 보완하겠다는 것"이라며 "남북 관계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 대북전문가는 "지금 남북 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은 천안함과 연평도 문제"라며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야 현정부와의 차별성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분야에서 박 후보는 국민대통합과 부패 척결 등을 주요 정책 기조로 제시하고 이를 위해 ▦특별감찰관제 도입 ▦상설 특검 ▦정치쇄신특별기구 설치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교육 정책으로는 고교 무상교육 실시와 저소득층 가정의 대학등록금 실질적 무료화 등을 제시했다.
신정훈기자 h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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