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으로 읽는 폭력의 기원/존 도커 지음ㆍ신예경 옮김ㆍ알마 발행ㆍ356쪽ㆍ1만7500원
인간의 역사는 살육의 역사다. 민족과 국가, 문명 혹은 이데올로기는 모두 피바다 속에서 일어섰고, 무화하는 과정에서 피바다를 이루어 다른 민족이나 이데올로기가 형성되는 토대가 됐다. 대규모 살육이 꼭 긴 호흡의 서사를 갖는 것도 아니다. 구글에서 학살을 뜻하는 'massacre'나 'genocide'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대량 살인과 고문, 강간, 인종 청소 등을 데일리 뉴스로 접하게 된다. 이 책은 이러한 인간의 특성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됐다. 제노사이드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 교수인 존 도커가 쓴 이 책은 인류가 되풀이해 온 폭력(이 책에서 '폭력'은 대규모 학살부터 선민의식이나 식민주의 등 여러 형태의 집단적 폭력을 포용하는 용어다)의 기원을 찾는 작업의 산물이다. 탐색의 공간은 고전. 현대의 사회철학이나 심리학이 아니라 구약성서, 그리스비극, 계몽주의, 리오타르와 들뢰즈의 저작 등이 그것이다. 지은이는 인간이 인간을 살육하는 원인을 되도록 먼 곳에서부터 찾기 위해 '인간 이전'의 역사까지 더듬는다. 제인 구달의 침팬지 연구가 이 책의 첫째 장으로 등장하는 까닭이다.
구달의 연구가 중요한 논거가 되는 1부는 폭력을 저지르는 것이 어쩌면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임을 보여준다. 침팬지의 행동과 르완다에서 일어난 제노사이드의 공통점이다. "두 번째 특징은 가해자들이 폭력을 즐길 뿐 아니라 극단적인 위험을 무릅쓸 정도로 폭력에 끌린다는 점이다… 집단적 무아지경에 빠지고, 폭력을 자행하는 동안에도 관능적인 감정을 느끼며 고도의 일체감을 경험한다." 이후 여러 시대의 고전을 통해서도 지은이는 인간이 폭력이라는 본능을 위해 망상을 키워왔음을 상기시킨다. 마지막 장에서는 근대 계몽주의 또한 폭력과 표리관계에 있는 망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믿는 사람에게 이 책에 기록된 인류의 궤적은 거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출애굽기의 신화부터 계몽주의까지 서양 중심의 인식에 홀로코스트의 씨앗이 담겨 있다고 보는 시각은 음미해볼 만하다. 다만 이 책은 인간의 집단적 폭력성에 대해 분석할 뿐 거기에 대한 가치판단은 하지 않는다. 방대한 고전을 끌어들이는 능력에 비해 지은이 자신의 창발적 논리가 부족한 점이 아쉽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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