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가 군인이면 파리가 새'라는 말이 있었다. 전쟁이 터지면 들고 있던 도시락을 흔들어 적의 레이더망을 교란하고, 죽음을 무릅쓰고도 동사무소 제일가는 재산인 복사기만은 사수하며, 일찍 포로로 잡혀 적의 식량을 축내는 특수 임무가 부여되지만, 총알이 빗발쳐도 오후 6시가 되면 무조건 퇴근(영화 속 방위에 대한 부연설명)하는 단기사병이다.
30일 개봉하는 곽경택 감독의'미운 오리 새끼'는 1987년이란 시절에 어리바리한 방위가 겪는 성장 드라마다. 그의 또 다른 성장 드라마 '친구'와 달리 '미운 오리 새끼'는 심각하지 않다. 그는"바닥에 이미 무거운 정서를 지닌 이야기라 당의정 같은 코믹한 요소가 필요했다"며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 생각하고 만들었고 제목도 그렇게 지어졌다"고 말했다.
영화의 주인공은 가정형편 때문에 '육방(6개월 방위)'으로 입대해 헌병대 이발병이 되지만 사진찍기, 바둑 두기, 변소 청소에 영창 근무까지 서는 잡병으로 파란만장한 군생활을 보내는 23세 낙만(김준구 분).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군대이야기야 흔해 빠져 식상할 수도 있지만 감독은 "헌병대 이야기는 없었다"며 "실제 깍새(이발병)였고 변도 치웠고 중대장에 밉보여 영창근무도 했던 나만의 독특한 에피소드가 있기에 (작품에)자신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 역의 오달수를 제외하면 영화의 배역은 주인공부터 모두 신인이지만 놀라운 연기력으로 캐릭터를 소화해낸다. 곽 감독이 지난해 SBS '기적의 오디션'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해 인연을 만든 배우들이다. 그는 "이들 때문에 이번 영화를 기획할 수 있었다"며 "많은 술자리를 통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며 교감했고 그 안에서 그들의 끼를 끄집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영화 중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미지가 흐릿하게 삽입된다. 그의 육성 연설을 바닥에 깔고 최루탄으로 범벅된 당시의 시대상이 펼쳐지는 장면이다. 곽 감독은 "그를 특별히 존경했던 건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그의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으며 죄책감이 들었고 정치적 성과를 떠나 양심적이었던 대통령에 대한 존경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분 자체가 미운 오리 새끼였다"고 덧붙였다.
군대 이야기인데도 영화의 시작과 끝에는 동네 바보 혜림(정예진)이 등장한다. 곽 감독이 살던 동네에 실존했던 인물이다. "59번 버스 서는 데서 사람들을 줄 세우던 미친 여자였다. 어느 날 배가 불러온 그녀를 보고 너무 속이 상했다. 제발 그 혜림이가 낳은 아이가 행복했으면 싶었다. 미친 여인을 성폭행한 악인과 광녀인 어머니의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난 그 아이. 최악의 따라지로 인생을 출발해야 하는 그 아이야말로 이 사회의 미운 오리 새끼 중의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었을까. 그 아이에게 희망을 전해주며 이야기를 맺고 싶었다."
전작의 흥행실패란 멍에에다 신인들로만 만드는 군대 이야기란 점 때문에 투자자 모집이 어느 때보다 힘들었다고 했다. 곽 감독은 "희망수치 50만"이라는 작은 바람을 내비쳤다. "그러면 투자자들에게 면목이 설 수 있고, 우리 연기자들이 팔려나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를 믿고 따라온 그들에게 '나 약속 지켰다'는 말을 하고 싶고요."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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