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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하루' 가격으로 결정되는 세상… 시스템에 갇힌 우리의 하루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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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하루' 가격으로 결정되는 세상… 시스템에 갇힌 우리의 하루하루

입력
2012.08.24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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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 박성원 지음ㆍ문학과지성사 발행ㆍ244쪽ㆍ1만2,000원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은 1975년 문예지 <문학과지성> 에 발표한 비평 '한국문학의 전개와 좌표'에서 이렇게 말한다. "유용함은 인간을 억압한다. 문학은 쓸모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으며 억압이 인간에게 얼마나 부정적으로 작용하는지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쓸모 없는 문학이 쓸모 있는 이유다." 그는 '무용한 문학의 유용성'을 주장한 것이다. 3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다수의 작가들이 이 무용성론에 대체로 동의하는 듯하다.

예컨대 박성원의 단편소설 '흔적'에서 이 말은 이렇게 변주된다. '언젠가 나에게 했던 말 기억나세요? 모든 생물은 생존하는데 필요한 것만 진화시킨다. 그런데 소설이란 게 과연 인간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것인가 하고요.'

박성원이 인간 억압을 폭로해 세계의 진실을 드러내는 대단한 소설을 쓰는 사람이란 뜻은 아니다. 다만 그는 1994년 등단 이후 그런 고민(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을 끝없이 키워왔고,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작품을 쓰려는 성실한 소설가이다. 신간 <하루> 는 그런 생각을 구체화시킨 소설집이다.

<하루> 의 마지막 수록작 '흔적'은 생물학 교수의 일상을 통해 작가의 문학관을 밝힌 소설이다. 주인공 '나'는 '사람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세상은 가격으로 이루어져'있다고 말한다. '필사적으로 소설을 쓰고' 있는 옛 제자 J는 수치와 계산으로 길들여진 그의 삶에 틈을 낸다. 문학은 과연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 하는 질문을 쏟아 내면서. 작가는 교수와 J의 관계를 통해 그토록 찾던 세계 밖의 출구는 기실 밖이 아니라 안에 나있을지도 모르며, 세계의 진실에 다가서기에는 과학보다 예술이 유리하다는 의견을 설파한다.

첫 소설집 <이상(異常) 이상(李箱) 이상(理想)> (1996, 문학과지성사)을 통해 시인 이상을 변주했던 작가의 이력을 아는 독자라면, 이 소설을 읽으며 프리모 레비의 장편 <주기율표> 를 연상하는 것이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화학자 출신의 작가는 자전적 형식의 이 소설에서 주기율표로 도저히 정의되지 않는 사람을 통해 세계를 보는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번 소설집에는 이렇게 앞선 작가들의 명작들을 유연하게 변주하고 그 과정에서 소설의 구성적 변화를 시도하면서 자신의 문학론을 슬며시 고백한 단편 7편이 실렸다.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는 물음에 답을 찾아 가는 이 작품들 모두가 수작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표제작 '하루'를 비롯해 '얼룩' '분노와 복종 사이에서 그녀를 찾아줘' 등은 이런 고민을 유려하게 승화시킨 작품으로 꼽을만하다.

고민의 무게에 비해 각 단편들이 다소 가볍게 읽히는 것은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독자는 작가의 대단한 포부를 듣기보다, 이야기만으로 인간 억압과 세계의 진실과 새로운 세계를 알고 싶어하니까.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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