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회 교사인데 이번 학기에는 역사를 가르쳐야 할 판입니다."
대구의 한 중학교 교사 A씨는 제 전공 과목인 사회를 제쳐두고 여름방학 내내 역사 공부에 매진했다. 2년에 걸쳐 배울 역사 과목을 한 주에 5시간씩 가르쳐 한 학기에 떼어야 하지만 이 많은 수업을 부담할 역사 교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넘쳐나는 역사 수업은 사회 교사에게 배정됐다. 반대로 사회를 집중이수하는 학기에는 역사 교사가 사회를 가르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A씨는 "잘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학생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도 문제지만, 많은 수업 시수와 행정업무까지 소화하다 보니 아이들 상담이나 인성같은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북의 한 고등학교 B 교사는 한 학기에 주당 4시간씩 몰아서 문학을 가르치면서 독서감상문 쓰기 등 활동을 전혀 할 수 없었다. 보통 학기 중 진도를 마치고 방학을 이용해 숙제를 내주곤 했는데 학생들이 다시는 배울 일이 없는 과목을 위해 따로 시간을 낼 리 없기 때문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집중이수제가 여전히 학교교육을 파행으로 몰고 있다. 집중이수제는 한 과목을 한 학기에 몰아 배울 수 있도록 한 것으로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2011년부터 시작됐다. 애초 취지는 과목 수를 줄여 학생들의 학습부담을 줄여주겠다는 것이었지만 학생들이 오히려 너무 빠른 진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소위 주요 과목이 아닌 사회나 예체능 등 과목을 한 학기에 몰아 배치하는 폐단이 나타났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달 9일 학기당 8과목으로 제한한 집중이수제 과목에서 예체능은 예외로 하는 보완책을 내놓았지만 도입 초기부터 문제로 지적돼 온 교원 부족은 전혀 해결되지 않아 갈수록 수업의 질은 떨어지고 있다.
A씨처럼 집중이수제의 여파로 교사가 자기 전공이 아닌 과목을 가르치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피해는 제대로 된 수업을 받지 못하는 학생의 몫이 되고 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지리 교사 C씨는 "중학생인 조카는 교사가 자기도 잘 모르는 비전공 과목을 가르치면서 교과서에 밑줄만 긋는다고 하더라"며 씁쓸해했다. 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D씨는 교단에서 얇은 책 붐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D씨는 "내용이 깊이 있고 좋은 잘 써진 교과서로 가르치다가는 도저히 한 학기에 진도를 뺄 수 없기 때문에 교과서의 질과 상관없이 교과서는 무조건 얇은 책으로 정한다"고 말했다.
교육현장에서는 음악, 미술, 체육을 집중이수제 8과목에서 제외할 수 있게 한 교과부 개선안이 현실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고 꼬집는다. 대구의 한 중학교 사회 교사 A씨는 "어차피 한 학기에 할 수 있는 과목이 정해져 있는데 예체능 과목을 제한다면 집중이수를 할 과목이 결국 어디로 가겠느냐"며 "나머지 과목에 그 피해가 고스란히 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성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책연구국장은 "8과목 제한을 그대로 두고 예체능을 풀려면 풀고 말려면 말라는 식의 개정안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학교장에게 알아서 하라는 것"이라며 "아이들 발달단계에 맞도록 학년별로 어떤 과목을 몇 시간씩 해야 하는지 균형 잡힌 이수 한계를 사회적 합의 하에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