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기세가 무섭다. 경선 당선 후의 광폭행보는 민주통합당 말마따나 허를 찔렀다. 고 김대중, 고 노무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할 줄 누가 예측이나 했나. 한걸음 더 나가 DJ정권과 참여정부 인사들까지 영입할 생각이란다. 고지가 눈 앞인데 무슨 일은 못하겠느냐는 강력한 권력의지가 엿보인다.
내놓는 정책도 거침없다. 복지와 경제민주화 공약은 실천 여부와 별개로 내용만으로는 야당과 별반 다르지 않다. 북한이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 대해 사과하지 않아도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하고, 대학생들을 만나서는 서슴없이 '반값등록금'을 약속했다.
박근혜는 노회하다. '선거의 여왕'답게 동물적인 감각이 있다. 자신의 취약점인 중도층과 수도권, 20~40대를 잡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정치적 스타일을 바꿀 태세가 돼있다. 진보진영조차 박근혜의 승리를 점치는 인사들이 적지 않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반면에 5년 만에 실지 회복을 노리는 야권은 지리멸렬이다. 민주당은 존재감이 사라졌다. 대선 후보들은 죄다 고만고만하다. 노선이나 정책도 이렇다 할 게 없다. 당의 기반이 넓어지기는커녕 갈수록 쪼그라든다. 통합진보당은 지지고 볶다 뿔뿔이 갈라설 날만 기다리고 있다. 큰 장이 곧 서는데 팔아먹을 물건을 다 날려버린 꼴이다. 이래서야 '2013년 체제'고 뭐고 논하는 것 자체가 사치다. 말 그대로 혜성처럼 나타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아니면 야권은 진작 짐을 쌀 판이었다. 지난 대선 때의 이명박과 정동영 대결보다 더 싱거운 게임이 됐을 것이다. 얼마나 절박하면 범야권 원로들이 "안철수 출마하라"는 촉구 성명까지 낼까 싶다.
어쨌든 지금은 야권의 명줄을 안철수가 쥐고 있는 형국이다.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여러 가지다. 첫 번째는 중도포기다. "고민해봤는데 저는 도저히 감당할 능력이 없는 것 같아요" 하는 경우다. 하지만 안철수는 이미 기호지세(騎虎之勢)라 그럴 가능성은 제로다. 두 번째는 무소속시민후보로 나설 때다. 민주당에 입당하려니 정치에 염증을 가진 무당파와 중도층 반발이 심해 못하는 상황이다. 제1야당인 민주당도 후보를 내지 않을 수 없으니 삼파전 양상이 된다. 박근혜로선 최선이고 야권은 최악이다. YS와 DJ가 싸우다 노태우 후보만 좋은 일 시켜줬던 1987년 대선의 재판이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단일화다. 한데 이게 그리 간단치 않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관건은 단일화 방식이다. 먼저 안철수의 민주당 입당을 생각해볼 수 있으나 앞서 말한 이유로 현실성이 떨어진다. 민주당은 오매불망이지만 안철수로서는 아쉬울 게 없는 터다. 9월에 선출되는 민주당 대선 후보의 지지율이 안철수를 넘어선다면 혹시 모르겠지만. 그래서 나오는 게 '임시정당'(페이퍼정당)론 또는 '제3의 정당'론이다. 단일화 경선을 위해 정당을 따로 만들자는 주장이다. 안철수는 민주당 입당을 하지 않아도 되고, 민주당은 안철수를 사실상 영입하는 효과가 있다. 대선 후보를 못 내는 정당은 152억 원의 정당 국고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고민도 해결된다. 선거가 지나치게 권력게임 화하지 않느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YS의 3당 합당이나 DJP연합에 비하면 약과다.
문제는 흥행이다. 얼마나 막판에'컨벤션 효과' '이벤트 효과'를 낼 수 있느냐에 성패가 좌우된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 경선의 성공 여부는 가장 중요한 변수다. 준준결승인 민주당 경선에서 흥행 효과를 최대한 살려야 준결승인 안철수와의 단일화 효과가 극대화된다. 그게 민주당도 살고 안철수도 사는 길이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은 그 갈림길이다. 보수세력이 정권을 연장할지, 아니면 진보세력이 되찾아올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다.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네 명의 '용감한 녀석들'에 달려있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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