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걸 민주통합당 의원이 자신의 트위터에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를 '년'으로 표현해서 한동안 시끌벅적했다. 의원 제명 이야기가 나오고, 발언 당사자도 유감을 표할 정도였으니 적절한 발언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4월에 있었던 국회의원 선거과정에서는 김용민 후보의 과거 막말 발언이 공개되어 선거 결과에 만만치 않은 영향을 줬다. 강용석 전의원은 국회의원 시절 여성 아나운서를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가 결국 정치권에서 사라지는 신세가 됐다. 생각해보면 정치인들의 막말 파문은 일일이 기억하기 어려울 만큼 자주 있었다. 탈북자에 대한 임수경 의원의 술자리 막말, 김문수 지사의 "춘향 따먹는" 발언,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의 룸살롱 '자연산' 발언 등이 꽤 오랫동안 회자됐고, 이해찬, 홍준표, 유인촌 등의 정치인들도 거친 표현으로 구설수에 오르곤 했다. 못 생긴 마사지걸을 골라야 서비스가 좋다던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언어 구사방식이 대체로 거친 것은 사실이다. 최근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고생의 99%가 비속어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자그마한 초등학생이나 곱상한 여고생의 입에서 상욕이 튀어나와 당황했던 경험은 누구든 한번쯤 겪었을 것이다. 성인이라고 크게 다를 바 없다. 자정 넘은 유흥가에서 불콰한 얼굴의 남녀가 소리 높여 욕지거리하는 모습은 전혀 낯설지 않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욕을 하는 것과 정치인의 막말을 비판하는 것은 모순되지 않는다. 사전에 따르면 욕설은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표현'이고, 막말은 '나오는 대로 함부로 하는 표현'이다. 보통사람의 욕설은 경우에 따라 스트레스의 해소방식이나 친근감의 표현일 수 있으나, 정치인의 막말은 자신의 얕은 소양이나 천박한 인식을 드러내는 계기이다. 보통사람이 술 마시며 특정 정치인을 육두문자로 욕하더라도 정치인이 이들을 비판할 수는 없지만, 정치인이 장삼이사의 상스런 언어를 내뱉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 것 또한 보통사람의 정서이다.
그동안 '정치인의 막말사건'으로 통칭되었던 경우를 보면 욕설을 해서 문제가 된 경우도 있지만 사려 깊지 않은 (사전적 의미의) 막말 때문에 논란이 생긴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이런 막말은 말하는 이와 듣는 이들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해석이 바뀌었다. 한 쪽은 상대 정파를 공격하기 위한 빌미로만 사용하고, 다른 쪽은 '정치적 공세'를 멈추라고 화를 내는 것이 진부한 공식이 됐다. 정치인의 막말이 쉽게 없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무현 정권이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새누리당의 전신인 당시 야당의 홍보위원장은 '노무현과 개구리의 다섯 가지 공통점'을 이야기했다. 이명박 대통령을 쥐에 비유해 조롱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막말이었다. '환생경제'라는 연극의 형식을 빌어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은 "노무현은 후레아들놈, 육실헐놈", "불알 값을 해야지" 라고 빈정댔다. 풍자보다는 막말에 가까웠다.
최근 한일관계의 냉각이 우리나라 외교의 가장 큰 현안으로 떠올랐다. 일본쪽 보도를 전해 듣자면, 일본은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보다도 일왕에 대한 사과를 요구한 발언에 더 불쾌해 하는 듯하다. 정부는 사전에 계획된 발언이 아니라고 해명했다는데, 어쩌면 이 발언이야말로 전형적인 정치인의 막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책임하게 말을 던지고, 결과적으로는 만만치 않은 비용을 치러야 할지도 모르는 발언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노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당시 한나라당의 정책위의장은 이를 '등신외교'라 명명했고, 이에 대한 비판이 일자 다른 중진 의원은 "등신이라는 말이 뭐가 아프냐"라고 두둔했다. 지금의 상황을 야당이 '등신외교'라 비판한다면 정부와 여당은 과연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내뱉은 막말 때문에 남의 막말을 비판하지 못하는 상황의 끝없는 반복. 정치인들은 계속해서 막말을 만들어내고, 보통사람들은 욕설을 멈추지 못한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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