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국영 매체에서 '시위자'는 애초부터 금지된 단어였다. 민중 봉기가 시작된 지난해 3월 국영 TV와 라디오는 거리를 채운 인파를 "혼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라고 비아냥댔다. 봉기가 내전으로 악화되는 동안 이들은 '공모자' '극단주의자' '테러리스트' 등으로 불렸다. 봉기는 '음모'로, 혁명은 '위기'로 폄하됐다. 갈등이 심해질수록 국영 매체의 왜곡도 극렬해졌다. 이런 거짓을 전하는 것은 올라 압바스(38ㆍ여)의 몫이었다. 15년간 국영 TV 간판 앵커 자리를 지킨 압바스는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얼굴이자 목소리였다. 그는 1년여 동안 국민에게 "시리아에 민중 봉기는 없다. 정국을 뒤흔들려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서구의 음모가 있을 뿐"이라며 "아사드는 국가 주권의 수호자"라고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하지만 정부군과 반군의 대립이 치열해지면서 특유의 견고하고 허스키한 그의 목소리는 힘을 잃어갔다. 국영 매체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다. 5월 훌라와 알쿠바이르에서 벌어진 정부군의 민간인 대학살 사진을 봤을 때 압바스는 자신이 해야 할 말들이 믿어지지 않았다. 매일 아침 출근길 차 안에서 또 아사드의 메시지를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찢어졌다.
두 달이 지난 7월11일 그는 양심을 따르기로 했다. 페이스북에 "더 이상 아사드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글을 남긴 후 다음날 프랑스 파리로 망명길에 올랐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22일 그의 인터뷰를 통해 아사드 정권의 프로파간다 실상을 전했다. 압바스는 "정보부 장관이 방송국에 출근하다시피 했고 뉴스는 대통령궁에서 전달된 내용으로 채워졌다"고 털어놨다. 내전의 격전지인 다라와 홈스의 현장 기자 리포트는 언급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생방송 중 시청자와의 연결도 통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금지됐다. 동료 연출자는 비밀경찰에 잡혀가 소식이 끊겼다. 참가자가 적었던 아사드 지지 시위 모습을 텅 비어 보이게 찍었다는 이유에서다.
압바스는 "아사드는 국민을 학살한 범죄자이자 괴물"이라고 분노했다. 압바스는 아사드처럼 시아파 소수 분파인 알와이트 신자이자 핵심 엘리트 집안 출신이다. 시리아 언론은 그의 망명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압바스는 "시리아로 돌아가면 비밀경찰에 체포돼 생방송 카메라 앞에서 내가 외국의 지원을 받는 테러리스트라고 고백하도록 강요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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