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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4. 부평초 하얀 꽃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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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4. 부평초 하얀 꽃 <105>

입력
2012.08.23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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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손 선생은 이제 여명창이 나올 때가 되었으니 그대가 평생을 바쳐서 이루어냈으면 어떠냐 하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그는 다시 창법의 네 가지에 대하여 쉽게 풀어서 말했다.

평조(平調)가 소리의 기본이니라. 한 밤중에 달이 중천 하늘에 높이 떠있는 것처럼, 또는 한들바람이 잔잔한 수면을 스쳐가듯이 맑고도 시원한 소리다. 우조(羽調)는 맑고 격하고 장하고 거세며 엄한 가락이니라. 사납게 들어올리기 때문에 맑고 장하고 격동하여 한 말이나 되는 옥이 부딪쳐서 깨어질 때에 옥 부스러기 소리가 요란하게 나는 것과 같도다. 계면조(界面調)는 처절하고 슬픈 소리니 아득하게 멀고 숙연한 가락이다. 다만 계면조는 다시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으니 평계면은 평조에 가까운 잔잔한 애조로, 단계면은 슬픔이 아직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가슴 속에 쌓여있는 울적함으로, 진계면은 슬픔이 북바쳐 통곡으로 터져 나온 소리니라. 그리고 여향(餘響)이 있으니 들보 위의 티끌이 떨리고 흘러가는 흰 구름을 멈추게 하는 가락이다. 새벽의 먼 산사에서 마지막 타종 소리가 끊길 때와 같도다. 이는 다만 소리꾼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득음과 더불어 터득해야 할 것이오 누가 누구를 가르쳐서 되는 일이 아니다.

손동리 선생은 백화 일행에게 부안의 자택을 알려주면서 뜻이 있으면 들러보라고 권했다. 이신통과 백화는 떠돌아 다닌지 두 해 만에 박돌의 놀이패와 헤어져 부안 상소산 아랫녘으로 손 선생을 찾아갔다. 손선생은 부안 고을에서 선대로부터 이어온 아전 집안으로 그 자신도 이방을 지냈다. 그는 중인이었지만 어려서부터 독선생을 들여 글을 배웠고 경서를 두루 읽었으며 이재 능력도 있어서 고을의 경주인 노릇으로 한양을 오르내리며 장사도 하여 가산을 늘려 놓았다. 이방을 하면서 동제며 절기에 따른 고을 행사를 주관하던 중에 풍류에 눈이 틔었고 스스로 연희패들과 교유하며 소리의 맛을 알게 되었다. 한 때 그는 두 번이나 상처를 하고 여염 살림에 뜻이 없어 연희패를 따라 삼남 각처를 돌아다니기도 하였다. 그는 경사서(經史書)를 읽은 비가비 광대를 자처했던 터였다. 관아에서 직임을 물리고 나와서는 상소산 아래에 터를 잡아 살림집과 함께 소리꾼들이 와서 서로 연습하고 배울 수 있도록 공청을 지어 언제나 몇 사람의 광대들이 와서 머물게 하고 있었다. 이신통은 그 집에 가자마자 솜씨를 보였으니 광대들의 소리와 사설들을 그대로 옮겨 적고 잘못된 부분은 고치고 지루한 대목은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백화는 함께 기거하는 소리꾼 선배들에게서 판소리의 가락과 청조며 기교와 사설을 배웠고 귀명창인 선생의 지적으로 다듬어 나갔다.

이신통이 손 선생과 의견이 다른 점이 있었다는데 그것이 떠나게 되었던 원인이었는지 아니면 백화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이신통이 직접 말한 바 없으니 남들은 그저 짐작하여 그러려니 할 뿐인 것이다. 하루는 신통이 정리한 소리 대본을 살피던 손 선생이 장지에 간필로 까맣게 써서 내밀며 말하였다.

내가 갈피에 끼운 대목에 집어넣도록 하게.

신통은 선생이 내준 글을 읽어 보고는 말했다.

이것은 전부 중국 사서와 경전에 나오는 글들이 아닙니까?

왜 어디 모르는 게 있나, 자네는 글을 배운 사람이 아니던가?

신통이 머쓱하여 선생을 바라본다.

저야 알지만 소리꾼들은 물론이오 백성들이 어찌 알아먹겠습니까?

소리꾼들은 가르치고, 백성들이야 모르고 넘어가도 이야기 맥락에 큰 지장은 없을걸세.

구경꾼의 대부분이 진서는커녕 언문도 모르는 이가 태반이올시다.

귀동냥이라는 말도 있잖은가. 풍류란 물처럼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라네. 양반 사대부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천대를 받게 될게야.

신통은 고분고분 대본을 들고 나와 선생이 끼워둔 대목을 다시 정성껏 필기하여 올렸다. 그리고 며칠 후 백화에게 길을 떠나겠노라고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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