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미국 뉴욕을 방문했다. 망설임 없이 찾아간 곳은 '주코티 공원'이었다. 그곳은 지난해 9월 오큐파이 월스트릿 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1%의 부자와 권력자가 99%의 다수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불평등 구조를 더는 용납할 수 없다며 뉴요커들이 직접 행동을 개시한 장소이다. 오큐파이 운동의 슬로건은 "우리는 모두 99%다"였다. 나에게 이 슬로건은 한국에서 들었던 "우리는 모두 정리해고자다"라는 구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99%라는 숫자는 체제로부터 배제된 자, 내버려진 자, 그러나 더 이상 당하고만 있을 순 없다며 거리로 나선 이들의 상징이었다.
나는 지하철을 타고 캐널 스트릿 역에서 내려 주코티 공원까지 걸어갔다. 캐널 스트릿은 차이나타운을 가로지르는 도로다. 그곳은 예전 그대로였다. 온갖 액센트의 음성과 온갖 색깔의 인종들이 뒤섞여 혼란스럽고도 격정적인 삶의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었다. 남쪽으로 걸음을 내딛자 예전에 쌍둥이 빌딩이 있던 자리에서 새로 지어지고 있는 고층 빌딩이 눈에 들어왔다. 사방이 반사유리로 둘러싸인 화려하고 웅장한 빌딩이었다. 그것은 미국 자본주의의 기념비였던 쌍둥이 빌딩을 대체하는 새로운 기념비처럼 보였다.
주코티 공원은 쌍둥이 빌딩이 있던 자리, 소위 '그라운드 제로' 근방에 위치했다. 나는 그곳을 지나가다 고개를 들어 한 번 더 새 빌딩의 규모를 확인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건너편의 대형 할인매장 입구로 드나드는 끝없는 인파가 보였다. 순간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라운드 제로와 대형 할인매장 사이를 잰 걸음으로 통과해 몇 블록을 걸어 내려가 드디어 주코티 공원에 도착했다. 그곳은 생각보다 너무 작은 장소였다. 공원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장소였다. 바닥은 온통 콘크리트였고 잔디 한 평 없었고 그나마 조경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군데군데 나무젓가락처럼 꽂힌 볼품없는 키 큰 가로수들뿐이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주로 관광객들만 있었다. 한 손에는 한껏 부풀어 오른 쇼핑백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공원 곳곳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주코티 공원은 마치 '만국의 관광객들'을 위한 휴식처처럼 보였다. 오큐파이를 연상시키는 것이 있다면, 공원의 경계에 서 있는 단 한 명의 뉴욕경찰뿐이었다. 오큐파이는 끝난 것일까. 나는 경찰에게 다가가 묻고 싶었다. "저, 실례합니다만 이제 다 끝난 건가요?"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다음날 들을 수 있었다. "아니 끝나지 않았어." 오큐파이가 한창일 때, 주코티 공원에 설치된 임시 부엌에서 일하던 내 친구가 말했다. 오큐파이는 이제 주코티 공원이 아니라 은행, 대학, 기업 등 다양한 곳을 점거해나가고 있다고 했다. 최근에 오클랜드 오큐파이 활동가들은 오바마 선거본부를 점거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는 오큐파이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주로 과거에 대해 이야기했다. 막 환갑을 넘어 손녀까지 둔 그녀가 차이나타운에서 40년 넘게 관여해온 운동들. 이주민을 위한 운동, 억울한 죽음을 위한 운동, 성적 소수자를 위한 운동…대부분 뉴스에 나오지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이야기를 듣다가 하워드 진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에 나오는 구절이 생각났다. "우리가 놀라는 까닭은 끓어오르는 조용한 분노와 최초로 들려오는 희미한 항의의 소리, 우리가 절망하는 와중에도 변화의 자극을 예시하는 곳곳에 산재한 저항의 조짐을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이다." 달리는>
조용하고 희미하고 산재하는 조짐들의 누적적 전개를 이해한다면 놀라운 사건은 사실 그리 놀랄만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내 친구는 오큐파이의 전사(戰士)이자 전사(前史)였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온 흐름 속에 존재하며 우리의 역할은 그 흐름을 이어가는 것이다. 누구는 대담하고 누구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영웅이 될 필요가 없고 될 수도 없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조짐, 움직임이다. 익명의 바통이다. 그리고 그 바통 위에는 '끝나지 않았어'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심보선 시인 ·경희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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