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을 오싹하게 만들던 납량특집 드라마가 올 여름 사라졌다. 2008, 2009년 '전설의 고향' 부활에 이어, 2010년 '구미호 : 여우누이뎐'을 선보였던 KBS는 올해 납량특집을 편성하지 않았다. MBC, SBS 역시 공포물 대신 천방지축 귀신이 나오는 '아랑사또전', 판타지사극 '신의' 등을 각각 내보내고 있다.
공포물의 추락은 국내 대표 납량특집 드라마 '전설의 고향'의 시청률만 봐도 뚜렷이 나타난다. 1996년 수목드라마로 방영했을 때만해도 평균 시청률은 27.8%(미디어서비스코리아 집계 기준)였다. 그러나 1999년 종영 이후 9년 만에 재방영한 2008년 시청률은 16.4%, 이듬해엔 호평에도 불구하고 5.1%를 기록했다. 정덕현 드라마 평론가는 "잔인한 살인마가 등장하는 영화가 인기를 끄는 등 매일 일어나는 사건사고만 들어도 보이지도 않는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시대"라며 "이젠 구미호 등을 다룬 신파극이 공포를 주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같은 공포여도 보다 현실적인 공포에 시청자가 눈을 돌리면서 외면 받게 됐단 분석도 있다. 윤석진 드라마 평론가(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최근 종영한 추적자, 유령 같은 드라마는 불법사찰 등 현실세계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충분히 당할 수 있는 일을 다룬다"면서 "공포는 현실과 밀접히 맞닿아있을 때 극대화되는데, 이들 드라마가 주는 섬뜩함이 설화에 바탕을 둔 납량특집의 오싹함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작자에게도 공포물이 그다지 매력적인 장르가 아니란 점도 추락에 한몫 했다. KBS 관계자는 "제작여건상 해외시장 공략도 생각해야 하는데 다른 장르의 드라마와 달리 공포물은 해외에서 호응 받기 더 힘들다"고 말했다. 낮은 시청률에 비해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을 반복해 써야 하니 제작비가 많이 들고, CG를 잘해봐야 본전이라는 점도 공포물 제작을 꺼리는 원인이다. 제작비의 일부를 보전할 간접광고(PPL)를 하기 힘든 점도 그 요인 중 하나다.
더욱이 올해에는 납량특집이 집중되는 여름철에 런던 올림픽이 열렸다. 그 중에서도 중요 경기가 몰린 심야 시간대는 보통 공포물이 방송되던 시간대(오후 10~12시)와 겹친다. 실제 올림픽 기간 중 방송 3사는 해당 시간에 방송되던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대다수를 결방했다. 올해 들어 심각한 마찰을 빚어온 방송환경도 여기에 영향을 미쳤단 분석이다. 정덕현 평론가는 "장기간 계속된 KBS MBC 파업으로 공포물을 제작하고 편성할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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