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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극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박완서 작가 '참척의 슬픔' 손숙의 넋두리로 살아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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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극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박완서 작가 '참척의 슬픔' 손숙의 넋두리로 살아나다

입력
2012.08.2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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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는 잠 안 오는 밤이면 장롱이나 천장 속을 뒤져 버릴 것을 찾는다. "생때같은" 목숨도 하루아침에 간 데 없는 세상인데 물건들의 목숨만 쓰잘 데 없이 길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손숙(68)의 모노드라마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아들을 가슴에 묻은 한 노파의 넋두리로 객석을 잡죄어 간다.

극단 단홍의 이 무대는 민주화운동으로 아들을 잃은 노파가 먼저 간 '형님'(윗동서)의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손아랫 동서와 전화로 펼치는 넋두리다. 가끔 의식을 놓아버리기도 하는 그의 상태 때문에 과거와 현실이 묘하게 삼투되지만, 덕분에 '모진 세상'의 현실이 더욱 생생하다.

무대에 두텁게 깔려 있는 것은 지난 시절의 시대적 고통이다. "중요한 건 창환이가 운동권이었느냐가 아니라 죽음까지 횃불로 삼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시대가 깜깜했다는 거 아닐까요" 노파의 말 뒤, '임을 위한 행진곡' 음향과 지난 시절의 영상이 함께 깔린다.

자손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죽는, '참척(慘慽)의 슬픔'이다. "백만 학도가 창환이를 열사로 떠받들었죠."

아들밖에 모르던 노파는 10년 전 시위 때 경찰의 진압으로 아들이 죽자 어느덧 투사로 변신한다. "그동안 나도 민가협 엄마들 덕에 의식화된 것도 있고…, 죽은 우리 창환이가 살아있는 판검사보다 골백번은 더 잘나 보이더라구요."

무대가 생경한 이념의 도구로 변하지 않는 것은 한 세대를 격한 두 노인의 아픔이 결국 여인의 한이란 점에서 동일하다는 점이 진하게 확인되기 때문이다. 자기 아들의 폐백을 받을 때에도 나를 영감님처럼 옆에 앉히는 형님 덕에 두 노파가 며느리의 큰절을 받는 진풍경을 연출하는 이들은 동지나 진배없다. 무대가 한국적 페미니즘이 현현하는 곳인 양 느껴질 때도 있다.

손숙씨는 "연극적 장치가 워낙 적어 낭독 공연을 연극화한다는 기분으로 (연습에)임하고 있다"며 "마지막 모노드라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담배 피우는 여자' 등을 비롯, 다양한 주제의 모노드라마를 선보였던 그의 4번째 일인극이다.

이 작품에는 지난해 작고한 원작자 박완서씨의 절절한 비극적 체험이 농축돼 담겨 있다. 그는 1988년 5월 남편을 잃고 석달 뒤에 25세 외아들(당시 서울대 의대 인턴)을 교통사고로 잃은 후 그 상처로 1년 정도 글쓰기를 중단하고 가톨릭에 귀의하기도 했다. 그리고 1993년 응어리진 슬픔을 1980년대 시대상황과 함께 담아 고백한 작품이 바로 소설'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다. 제목은 김현승 시인의 시 '눈물'에 나오는 문구로 '내가 마지막까지 지니고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유승희 연출. 24일~9월 23일 충무아트홀 블랙. (02)2230-6601

장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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