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납세자 편의를 이유로 허용하는 국세 '주식 물납(物納)' 제도가 고액 자산가의 탈세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정부가 이 제도의 구조적 허점을 방치한 탓인데, 최근 4년 동안 세수 결손액만 2,330억원에 달한다. 국세의 주식 물납이란 납세자가 현금 부족을 이유로 주식, 채권 등으로 세금을 내는 제도를 말한다.
21일 기획재정부와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08~2011년 정부가 거액 재산을 증여하거나 상속 받은 납세자들에게서 5,887억원의 세금을 주식 형태로 거뒀으나, 이 주식을 처분해 국고로 환수한 현금은 물납액의 60.3%인 3,552억원에 불과했다. 또 물납 주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상장 주식의 회수율은 2008년 66.3%, 2009년 60.0%, 2011년 51.4% 등 매년 하락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회수율이 50%에도 못 미치는 이들 주식 대부분이 납세자 본인이나 친척, 관계회사 등에 매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2011년의 경우 매각된 물납 주식의 28.4%가 당초 주식을 내놓은 납세자에게 돌아갔다. 해당 주식의 발행 회사나 관계 회사 등 물납자의 영향권 아래 놓인 매수자에게 넘어간 비율도 42.8%에 달한다.
예산정책처는 "정부가 지난해 4월 '물납자 본인의 해당 주식 저가 매수'금지 조항을 관련 시행령에 포함시켰으나, 물납자의 친족 등 특수관계인을 통한 저가 매수는 여전히 허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납제도가 과세 형평성을 저해하고, 혈족ㆍ인척ㆍ특수관계인 등의 대리 매수를 통한 조세회피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여전하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국회와 학계를 중심으로 물납 제도의 대대적 축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전세계 주요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의 물납제도가 가장 느슨하다. 조세의 현금 납부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미국은 물납제도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도 미술품 및 문화재와 같이 예술적ㆍ역사적ㆍ학문적 가치가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또 환금성에 대한 검토 없이 재무제표를 통해서만 주식 가치를 계산해 저가 낙찰되는 현상을 막으려면 주식 가치를 보다 보수적으로 평가하도록 관련 규정을 바꿔야 한다는 주문도 나오고 있다. 김형돈 기획재정부 조세정책관은 "납세자 편의 증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물납제도의 장점도 무시하긴 어렵다"며 "과세 형평과 납세자 편의를 모두 감안해 개선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