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운전을 금지하고 길에서 애정행각을 벌인 남성을 채찍으로 다스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순결을 잃은 딸이나 여동생을 죽이는 명예살인 관습이 남아 있고 방송에서 성적인 발언을 하다 징역을 사는 일이 벌어지는 초(超)보수주의 국가다.
그러나 일상 생활에서 종교경찰의 감시에 억눌려 지내는 사우디 사람들에게도 숨겨 왔던 욕망을 간접적으로나마 해소할 수 있는 해방구가 존재한다. 바로 TV다.
뉴욕타임스(NYT)는 19일 "사우디 국영TV에서조차 약한 수준의 사회풍자가 허용되고, 새로운 드라마나 코미디 프로그램 등이 홍수처럼 쏟아진다"며 TV에 빠져드는 사우디 사람들의 일상을 소개했다.
최근 사우디 TV 프로그램에는 기존의 금기를 깨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코미디 프로그램 '허시 허시'에서는 세 명의 남성이 한 여성을 유혹하고, 이 여성이 자동차를 운전하는 내용이 나온다. 공공장소에서 남녀동석을 금지하고 여성의 운전을 불허하는 율법에 거스르는 행동이다. 물론 이 드라마에서도 여성이 직접 운전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앞 뒤 상황으로 미뤄 운전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해 교묘히 금기를 비껴간다.
성적인 내용을 담은 터키 드라마, 모로코 여가수의 공연, 폭력 장면을 담은 외국 영화 등도 과거 사우디 TV에서는 볼 수 없던 프로그램이다. 하이힐을 신은 여형사가 남자 용의자에게 수갑을 채우거나, 여의사가 동료 의사와 사랑에 빠지는 장면 등도 여과없이 방영된다.
성적 금기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인 종교적 금기에 도전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오마르'라는 이름의 31부작 대하드라마가 그렇다. 7세기 이슬람제국 창시자 칼리프 오마르의 삶을 다룬 이 드라마는 묘사가 금기시됐던 사하바(예언자 무함마드의 동료)의 얼굴을 등장시켜 논란을 일으켰다. 또 영화 '매트릭스'를 연상시키는 칼싸움 장면이 등장했고, 세상을 개혁하려는 청년 오마르의 모습은 최근 주변국에서 불거진 '아랍의 봄'을 연상시켰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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