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금융권 규제 땐 경영권 흔들려" "금융-산업 차단막 더 높여야"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규제는 엄밀히 말해 산업자본의 은행소유만을 제한하는 '은산분리'에 가깝다. 증권 보험 카드사 등 제2금융권에 대해선 사실상 소유제한이 없는 상태다.
현재 정치권에선 금산분리를 한층 강화하고, 차제에 제2금융권까지 이 원칙을 적용하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금융계열사를 통한 그룹 지배 및 비금융계열사 부당지원을 막자는 것이 기본 취지이지만 현재 제2금융권 계열사를 갖고 있는 재벌그룹들의 경우 전체 지배구조까지 흔들릴 수 있어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김영용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는 "출자구조와 지배구조를 인위적으로 재편하려는 것은 부적절하다"면서 금산분리 강화에 반대입장을 밝혔다. 반면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금융회사가 재벌의 사금고가 되면서 총수의 지배권남용과 비리가 나타날 수 있다"면서 금융과 산업 사이의 차단막을 더 공고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금산분리는 과거보다 완화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현재 정치권의 논의는 강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야당은 그렇다 쳐도 (현 정부에서 금산분리 완화입장을 폈던) 새누리당조차 이젠 제2금융권까지 금산분리를 엄격 적용하자고 한다. 금산분리 강화를 대세로 봐야 하나.
김영용: 금산분리는 영국 영란은행이 중앙은행이 되기 전, 왕실이 영란은행에 일반 상행위에 관한 각종 특혜를 주던 것을 의회가 금지한 게 계기가 됐다. 이는 금산분리가 금융과 산업의 관계가 아니라 금융과 정부의 관계에서 연유한 것이란 의미다. 그런데 지금 정치권의 금산분리에 대한 논의는 이런 역사적 뿌리를 간과한 채, 경제민주화라는 모호한 개념에 함께 쓸려 들어가는 형국이다.
김우찬: (그 뿌리가 어떻든) 금산분리 정책은 여전히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유효한 금융정책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었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금산분리 완화정책을 추진했다. 이는 세계적 흐름과도 맞지 않는 방향이다.
-금산분리가 경제민주화와 어떤 연관성이 있나.
김우찬: 금융회사의 돈은 기본적으로 고객의 돈이지 대주주의 돈이 아니다. 재벌이 금융계열사 자금으로 비금융계열사에 출자하고 지원한다면, 재벌 총수는 사실상 고객의 돈으로 그룹을 지배하는 셈이다. 이와 같은 재벌의 사금고화,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금산분리는 반드시 필요하며 이는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원칙이다.
김영용: '재벌'이라고 불리는 기업집단은 계열사를 효과적으로 지배하고 그룹 차원의 의사결정을 함으로써 신규투자, 계열사 확장 및 신설, 퇴출을 최적화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어려움에 처한 계열사를 도와 회생시켜 그룹 전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재벌이 금융계열사를 소유하는 걸 무조건 사금고화나 부당지원의 시각에서 봐선 곤란하다.
-은행에 대해선 오랜 역사를 통해 금산분리에 대한 원칙적 공감대가 마련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2금융권까지 재벌의 소유나 의결권을 강하게 규제할 경우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현실적으로 삼성그룹은 삼성생명 삼성카드가 그룹 지배구조에서 중요한 고리역할을 하는데, 이를 규제할 경우 전체 지배구조가 흔들리게 된다.
김영용: 제2금융권의 계열사 소유를 금지하거나 의결권을 제한하려는 건 금산분리의 명분 보다 총수 위주의 지배구조를 바꾸려는 의도라고 생각한다. 대체 왜 지배구조를 인위적으로 개편해야 하나. 삼성그룹이나 현대차그룹이 순환출자구조를 갖고 있지만 훌륭한 사업성과를 내고 있지 않나. 출자구조에 전형(典型)이란 있을 수 없는데, 만약 지분과 의결권을 제한해 인위적으로 재편하려 들면 해당 기업집단은 물론 경제 전체적으로 비용만 유발할 우려가 있다.
김우찬: 일부 특정 그룹들이 힘들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삼성생명이나 삼성화재의 의결권을 제한한다고 하면 이건희 회장 일가는 힘들어지겠지만, 이는 총수 개인에 대한 것이지 그룹 전체에 대한 제약은 아니다.
김영용: 글로벌 기업경쟁은 역동적이고 치열하다. 현재 성과를 기준으로, 더구나 국내 시장만을 기준으로 경제력 집중을 문제 삼아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규제를 하겠다는 것은 논거가 부족하다.
-사실 세계적으로 산업자본과 제2금융을 분리하는 곳은 없지 않나. 국내기업에 대한 역차별이란 불만도 나오는데.
김우찬: 그런 주장을 펴는 쪽에선 미국 제네럴일렉트릭(GE)나 버크셔 해서웨이의 예를 든다. 실제로 GE는 산업자본이지만 금융계열사(GE캐피탈)를 갖고 있고, 워런 버핏의 버크셔 헤서웨이도 보험지주회사이지만 산업계열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지주사가 자회사 지분 100%를 직접 소유하고 있고, 금융계열사와 비금융계열사 간에 출자고리는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다. 금융자회사 자산을 그룹지배권 유지ㆍ확장에 악용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차단막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미국 보험법에 소유에 대한 사전적 규제는 없지만 엄격한 공시제도와 자산운용규제를 통해 사실상 금산분리 원칙을 실현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와는 현실이 다르다.
-금산분리완화든, 금산분리강화든 금융 계열사가 부당지원에 동원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리라고 본다. 파장을 최소화하면서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 방법은 뭐라 생각하나.
김우찬: 산업자본의 은행 또는 은행지주회사 소유한도를 2009년 법 개정 이전으로 환원(9%→4%)해 금산분리 원칙을 실현해야 한다. 현재 제2금융권 계열사를 갖고 있는 재벌그룹들에게 소유를 하지 말라고 하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는 만큼 소유제한 보다는 의결권제한을 강화하는 게 타당하다고 본다.
김영용: 총수의 전횡을 통제하겠다는 목적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금산분리가 해결책은 아니다. 과도한 소유ㆍ의결권 제한으로 지배구조가 흔들리게 되면 오히려 적대적 M&A위협에 노출될 우려도 있다. 사금고화 논란을 낳는 금융계열사와 비금융계열사 간 거래 및 지원 문제는 대출한도책정 등 적절한 방화벽을 설치해 처리하면 된다. 이는 금융기관의 대차대조표 점검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부분이다.
정리=이성기기자 hangil@hk.co.kr
■ MB정부 들어 금산분리 완화… 여야 정치권 "U턴" 목소리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떼어 놓는 금산분리정책은 우리나라 금융정책의 오랜 골간이었다. 제2금융권과 일부 지방은행 및 신설은행에 대해선 대기업의 소유가 어느 정도 허용됐지만 대형 시중은행만큼은 철저하게 산업자본과 분리시켜왔다.
하지만 MB정부는 기업규제완화(비즈니스 프렌들리)의 차원에서 출범과 함께 금산분리 완화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산업자본도 은행지분을 9%(종전 4%)까지 소유할 수 있게 됐고, 보험 증권 등 비은행 금융지주회사는 제조업체를 자회사로 둘 수도 있게 됐다.
대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은 경제민주화 맥락에서 MB정부 이전 수준으로 금산분리를 강화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야당인 민주통합당의 경우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소유한도를 4%로 환원하는 은행법 개정안과 ▦비은행(증권 보험) 금융지주회사가 비금융회사(제조업체)의 주식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추인한 상태다.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은 한발 더 나아가 제2금융권까지 금산분리 원칙을 확대 적용하자는 강경한 입장을 펴고 있다. 주요 내용은 ▦산업자본의 제2금융권 계열사 지분소유를 제한하고 ▦보험사의 일반계열사에 대한 의결권제한(현 15%)을 더 강화하며 ▦비은행 금융지주회사의 일반 자회사 지배를 금지하는 것 등이 핵심이다.
만약 이 안대로 입법화할 경우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카드 등 11개 비은행 계열사를 두고 있는 삼성그룹을 비롯해 동부그룹(10개), 롯데그룹(10개), 한화그룹(9개) 등은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예컨대 삼성의 경우 삼성생명이 전체 순환출자구조에서 핵심적 고리역할을 하는데, 만약 소유나 의결권을 제한하면 전체 그룹지배력 약화가 불가피해진다. 아울러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는 금융사들은 지분을 대거 처분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면서 금융사를 계열사로 보유하고 있는 재벌그룹은 총 29곳이다. 이처럼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의 안은 워낙 혁명적이어서, 당내 보수그룹의 큰 반발을 사고 있는 터라 당론채택여부는 불투명해 보인다.
세계적으로는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금융리스크'문제가 제기되면서 금산분리는 다시 강화되는 추세다. 특히 은행에 대해서만큼은 금산분리가 불문율처럼 여겨지고 있다. 세계 100대 은행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292개 산업자본 가운데 89.0%가 4%미만을 보유하고 있으며, 산업자본이 최대 주주인 경우는 7개 은행에 불과하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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