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대선 교육정책을 발표했다. 20여 개의 정책 대부분 좋게 느껴졌다. 대단한 공력을 들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중 박 후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어떤 것일까. 혹시 맨 앞에 있는 것 아닐까.
"개별 학교의 자율성을 대폭 강화해서, 학교마다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효과적으로 계발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하겠습니다."
역시 맨 앞에 놓일 만한 정책이다. 학교교육을 획기적으로 바꿀 엄청나게 큰 정책이다. 사실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계발하는 교육이 실제로 이루어지게 된다면 교육문제의 상당부분은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언론은 이 정책에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언론이 '고등학교 무상의무교육'이란 정책에 더 크게 주목했다. 고교무상교육은 20여 개의 정책 중 14 번째로 제시된 정책에 불과한데도 첫 번째로 제시된 정책보다 훨씬 더 비중이 크게 보도됐다. 그런데 고교무상교육에 비해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살리는 교육을 하는 것이 10배는 더 큰 일 아닌가. 물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언론은 박근혜의 첫 번째 정책에 대해 실현 가능성이 없는 대국민 립서비스에 불과한 정책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긴 나도 상당부분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박근혜의 첫 번째 교육정책은 립서비스인 것이 차라리 더 낫다고 생각했다.
사실 학교마다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계발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적절하고 올바른 실현 방안이 없이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박근혜는 '개별 학교의 자율성을 대폭 강화'하는 것을 방안으로 제시했다.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살리겠다는 정책 목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그것의 실현 방안에는 큰 문제가 있다.
지금의 상황에서 교육과정에 관한 개별 학교의 자율성을 대폭 강화하면 학생의 소질과 적성이 계발되기는커녕 오히려 크게 억압당할 수 있다. 교육과정이 성적 상위권 학생을 위주로 운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학교는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해서 국영수 과목의 수업 시간을 일률적으로 늘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상위권 대학이 입시에서 국영수 과목의 수능 성적 전부를 비중 있게 반영하는 상황에서 학교는 그렇게 밖에는 달리 행동하기 어렵다.
입시에서 국영수 과목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처럼 말하지만 지금의 입시제도에서도 그것은 온전한 진실이 아니다. 그것은 상위권 학생에게만 해당하는 얘기일 뿐이다. 지금의 입시제도에서도 상당수 학생들은 국영수 과목 전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예컨대 전문대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국영수 세 과목 중 한 과목만을 열심히 공부해도 대학 진학에 별 지장이 없다. 전문대의 경우는 입시에서 수능시험의 국영수ㆍ사회(또는 과학) 4개 영역 중 2개 영역만을 반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전문대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까지 많은 시간의 국영수 수업을 받게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교육과정에 대한 개별 학교의 자율성이 대폭 강화되면 이러한 현상은 훨씬 더 심화될 것이다.
학교만을 탓할 일도 아니다. 지금의 내신제도에서 학교는 그럴 수밖에 없다. 그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교장이 된다 하더라도 달리 행동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 그 동안 교육부건 교육청이건 학교에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국영수 과목이 과도하게 많아져서는 안 된다는 또 다른 당위성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교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선의의 정책이 학생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부정적 결과를 낳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7월 11일의 이 칼럼에서 그 방안의 일단을 얘기한 바 있다.
이기정 서울 북공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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