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우여곡절끝에 도입한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 시행을 앞두고 재계와 환경시민단체 간의 신경전이 대단하다. 시행령 입법예고종료일(9월1일)이 다가오면서 서로의 입장을 반영시키기 위한 시도가 점입가경이다.
지난달 23일 정부가 내놓은 시행령의 핵심은 배출권 무상할당 비율을 1차 기간엔 100%, 2차는 95%로 하는 것이다. 재계는 부담 최소화를 위해 2차 기간에도 100% 무상할당을 요구하고 있지만, 환경시민단체들은 이 수준으론 제도 도입 취지를 살릴 수 없다며 더욱 강력한 감축 체계를 주문한다.
신문광고까지 하면서 이 법의 국회 통과 저지에 총력전 펼쳤던 재계는 결국 5월 국회가 법안을 의결하자 시행령 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태세다. 박태진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장은 "국제탄소시장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인 만큼 국내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고려해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해야 한다"며 "시행 초기 시범사업 성격도 있는 걸 고려할 때 2020년까지 배출권의 전면 무상할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시행령은 재계의 집요한 무력화 시도에 물러서지 말아야 할 부분에까지 밀리고 말았다"며 "이 제도가 온실가스를 줄이고 기업의 체질 개선에도 기여하기 위해선 도입 취지에 반하는 독소조항들을 과감하게 수정해야 옳다"고 지적했다.
●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유도하기 위해 기업별로 배출 허용량을 정한 뒤 이보다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업은 초과한 양만큼 배출권을 사도록 하고, 반면 할당량보다 온실가스를 덜 배출한 기업은 줄인 만큼 배출권을 팔 수 있도록 하고 있다. 5월 국회 본회의에서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함에 따라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시행된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 "세계경제 침체 속 비용부담 경쟁력 발목… 거래시장도 불안정, 총괄적 재조정 필요"
모두 잘 알고 있다시피 우리나라는 2009년 11월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 배출 전망치(BAU) 대비 30% 감축하겠다는 자발적 목표를 국제사회에 공표했으며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금년 초부터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를 실시하고 있고, 또 하나의 수단으로 도입하는 것이 바로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다.
물론 인류의 미래를 위해 기후변화를 방지하기 위해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으며, 범지구적인 환경문제인 기후변화 해결에 우리나라가 선도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기후변화 국제협상이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최근엔 세계적으로 경기가 침체되자 주요국들은 자국 산업의 국제 경쟁력 보호를 위해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법 도입을 포기하거나 연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산업계는 배출권거래제를 좀 더 신중하게 조율해주기 바라고 있다.
비용 최소화가 곧 경쟁력인 기업환경에서 배출권거래제의 도입으로 인한 비용부담은 국내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이나 외국인의 국내투자 기피로 이어져 투자와 고용 여건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출권거래제는 정부가 기업에게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해주고, 이와 대비해 남거나 모자라는 배출권은 다른 기업에 팔거나 사오도록 하는 '시장 기반'의 규제 정책이다. 즉, '배출권거래 시장이 얼마나 잘 형성되느냐'가 이 제도의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이다. 그러나 선도적으로 배출권거래제를 도입·운영해 온 유럽연합(EU)의 배출권 거래 시장을 살펴보더라도 경기변동에 따라 배출권 가격이 급격히 등락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전세계적인 경제위기의 여파로 배출권(CERㆍcertified emission reductions) 가격이 톤당 3유로 이하까지 하락하였는데 이는 배출권거래 시장이 활발하게 운영되던 2008년경의 가격인 20~35유로에 비해 10분의 1 수준에 지나지 않으며 작년에 비해서도 고작 3분의 1 정도인 것이다. 또한 미국 북동부 10개주에서 발전부문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배출권거래제 시장에서도 배출권 가격은 톤당 2달러 내외에 머무르고 있다.
이러한 배출권 거래시장의 불확실성과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들은 자국 산업의 국제경쟁력 저하 등을 우려하여 본격적인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주저하고 있다.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5월 배출권거래제법이 제정된 만큼, EU의 배출권거래제와 유사한 형태로 시행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도록 시행령을 적절하게 조정하고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외 의존도가 높고 제조업의 비중이 높다는 점을 반드시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먼저, 제도시행 초기인 1, 2기(2015~2020년)에는 배출권을 100% 무상할당하고, 3기 이후에는 국제 동향, 산업경쟁력을 고려해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배출권을 100% 무상할당 할 경우 산업계가 아무런 비용 부담 없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유상할당 비용을 제외하더라도 각 기업이 정부로부터 할당 받은 감축목표 달성을 위해 설비개선·도입 등으로 약 4조2,000억원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배출권거래제 시행을 통해 온실가스를 감축할 뿐 아니라 대체에너지산업을 비롯한 녹색산업의 성장을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 시행 전반에 걸쳐 환경규제와 산업진흥을 담당하고 있는 부처 및 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는 할당계획 수립 등 중요한 사항을 결정할 때에는 반드시 산업계가 함께 참여하여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여 주기 바란다.
박태진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장
■ "재계 입장만 반영한 시행령은 이중 특혜… 무상할당 요구도 오염자 부담원칙 배치"
최근 정부가 입법예고한 배출권거래제법 시행령 내용을 보면 재계의 막무가내식 요구에 백기를 든 모양새다. 제도 도입 논의 초기부터 재계는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되면 국제경쟁력이 약화 된다"며 입법 저지에 총력전을 펴왔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부터는 시행령에 담겨야 하는 온실가스 감축 기능을 무력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런저런 핑계를 들어 책임은 피하고 이득은 극대화하려는 재계의 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겉으론 온실가스 감축에 동의한다고 말하지만 속내는 딴판이다. 기후변화는 기업들이 알 바 아니고, 법률이 정하고 있건 말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무시하고 가자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배출권거래제의 기본 뼈대까지 허물자는 식의 무리한 주장을 펼 리 없다.
재계의 요구를 간추리면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2020년까지 배출권을 공짜로 달라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부처의 관리감독을 받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요구를 들어줄 바에야 배출권거래제는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낫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기여하기는커녕 일부 기업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배출권을 기업들에게 무상으로 주는 것은 오염자부담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기후변화가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인 이상, 기업이든 개인이든 온실가스를 내뿜는 만큼 대가를 지불하는 게 당연하다. 시장왜곡도 문제다. 배출권을 모두 공짜로 얻은 기업들은 온실가스 감축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남아도는 배출권을 팔아 부당이득을 올릴 수 있다. 배출권 유상할당 수익은 기업들의 온실가스 감축 설비나 기술개발 지원에 사용된다. 대부분 산업계 지원에 사용되기 때문에 '이중 부담'이라는 재계의 주장은 엄살에 불과하다.
부문별로 다른 부처가 관장기관을 맡아야 한다는 재계의 억지 주장에도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처럼 산업진흥부처인 지식경제부의 품 안에서 감축 부담을 줄여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경부는 배출권거래제 시행을 "우리나라 기업들이 독박 쓰는 것"으로 비유하는 등 재계의 주장을 여과 없이 대변해왔던 부처다. 최근에는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전망 및 목표설정 부풀리기를 눈감아주는 등 심각한 폐해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렇듯 기업 편의 봐주기에 익숙한 부처에 배출권거래제 업무를 담당하게 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 된다.
배출권거래제가 갖춰야할 핵심 요소는 실효성, 공정성, 투명성이다. 실효성은 엄격한 배출권 할당으로 기업들이 장부상 감축이 아니라 실질적인 감축을 하도록 해야 확보된다. 공정성 보장은 업종 간 형평성을 잃지 않고, 부당이득과 시장 교란요인을 사전에 차단해야 가능하다. 투명성은 제도 운영 전반에 대한 정보 공개를 확대해 공적 영역이 시장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시행령 입법예고안은 이미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대폭 후퇴한 상태다. 재계의 집요한 무력화 시도에 밀리다보니 실효성, 공정성, 투명성 어느 것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 오히려 100% 무상할당, 수출기업의 유상할당 면제, 조기 감축 실적과 상쇄의 대폭 허용, 금융·세제상의 지원 등 이중 삼중의 특혜를 담고 있다. 이런 특혜들은 중소기업보다는 주로 대기업에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배출권거래제를 이대로 시행할 경우 심각한 혼란과 부작용이 불가피해 보이는 이유다.
배출권거래제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하느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이 제도가 온실가스도 줄이고 기업 체질도 개선하는 약으로 기능하기 위해선 지금이라도 도입 취지에 위배되는 독소조항들을 과감하게 수정해야 한다. 무상할당과 조기 감축실적 및 상쇄 인정비율을 줄이고 일부 기업들이 부당이익을 올릴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이미 유럽연합의 배출권거래제 운영과정에서 문제점을 드러냈던 독소조항들을 그대로 존속시킬 생각이라면, 향후 나타나게 될 부작용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정부와 재계가 져야 할 것이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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