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는 자신의 악보에 음표 외에는 어떤 지시어도 기입하지 않았다. 연주자가 자유롭게 해석하고 재창조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바흐 음악 애호가들에게 이 연주자의 방한은 늘 가슴 설레는 소식이다. 바흐 전문가로 정평이 난 캐나다 피아니스트 안젤라 휴이트(54)가 4년 만에 내한 연주회를 갖는다. 2008년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을 들고 한국을 찾았던 그가 이번에는 '골드베르크 변주곡'(9월 12일)과 '푸가의 기법' 등(9월 13일)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연주한다.
20일 전화로 그를 미리 만났다. 그는 "나는 상당한 시간을 바흐 작품에 쏟고 있고 나의 연주는 예전에 비해 점점 색채와 깊이에 있어 발전하고 있다"고 말해 이번 연주회에도 기대를 품게 했다. "어느 누구도 여자 연주자로서 나보다 더 많이 바흐 작품을 녹음한 연주자는 없을 겁니다. (그는 1994년부터 11년 간 영국 하이페리온 레이블로 바흐 건반악기 작품 전곡을 녹음한 바 있다.) 완벽한 해석과 훈련, 높은 음악적 지식까지 갖춘 특별한 공부와 준비를 통해 단순히 바흐 작품을 연주하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바흐와 마주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캐나다 출신인 글렌 굴드(1932~1982) 이후 대표적인 바흐 전문가로 꼽히는 그는 오르간 연주자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3세 때부터 피아노를 익혔다. 피아노뿐 아니라 바이올린, 리코더, 발레도 같이 배웠다. 특히 발레는 아마추어 발레단에서 활동했을 만큼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춤곡의 요소가 많은 바흐 건반 음악의 리듬을 느끼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전형적인 음악 신동의 길을 걸었지만 그가 연주자로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상당한 노력이 뒷받침된 덕분이다. 1978년 비오티 콩쿠르를 시작으로 라이프치히 바흐 콩쿠르, 워싱턴 콩쿠르, 슈만 콩쿠르, 카자드시 콩쿠르, 디노치아니 콩쿠르에서 차례로 상위 입상했고 27세였던 1985년에는 글렌 굴드의 음악 업적을 기리는 토론토 국제바흐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우승 혜택으로 도이치그라모폰과 음반 녹음 계약을 하면서 피아니스트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피아니스트이자 음악 칼럼니스트인 김주영씨는 "안젤라 휴이트가 부침 없이 연주 활동을 한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다양한 콩쿠르 경험 등을 통해 꾸준히 성장해 온 피아노 연주자"라고 설명한다.
안젤라 휴이트는 항상 자신이 먹을 것을 공연장에 가져 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정어리와 바나나가 단골 메뉴다. "대곡을 칠 때 즐겨 먹는 메뉴"라는 설명이다. "당연히 에너지 보강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지만 이것을 먹는 행위 자체만으로 정신적으로도 큰 여유를 갖게 되죠. 이번 공연 때 어떻게 할지는 서울에 가서 결정하려고 해요."
그는 첫 음반을 낸 이후 "난 이 부분이 가장 어렵다"식의 개인적인 의견을 넣은 음반 의 해설서를 직접 써 왔다. 그는 "때로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지만 내 의견을 쓰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소통하는 것을 통해 나도 많이 배우고 있어 연주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안젤라 휴이트가 바흐 연주만 잘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크 시대의 다른 작곡가는 물론 낭만시대와 근ㆍ현대 작곡가 작품의 연주도 뛰어나다. 그런 그가 바흐에 많은 시간을 쏟는 이유는 뭘까. "기쁨과 슬픔을 넘어서는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어 표현하기는 참 어렵지만 바흐의 음악은 요즘처럼 다양한 음악이 존재하는 시대에도 사랑 받을 수 있는 시공을 초월하는 강력한 힘이 있으니까요."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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