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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대담-경제민주화 대해부] <5> 비정규직 보호

입력
2012.08.20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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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규직 전환 촉진이 우선 과제" "기업경영 부담에 고용質 더 악화"

19대 국회에서 가장 '뜨거운' 상임위원회는 환경노동위원회다. 이례적으로 여소야대(여당 7명, 야당 8명)로 짜여진데다, 노동전문가 출신 야당의원들이 대거 포진한 탓이다. 지금 이 곳에선 비정규직 문제가 핵심 입법의제로 거론되고 있다.

사실 비정규직은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최대 현안이자 가장 오래된 현안이지만, 사실상 정부와 정치권이 방치해 온 측면도 있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경제민주화 흐름과 역대 최강성의 환노위 출범이 맞물리면서, 비정규직 문제는 이제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노동자들은 노동자들대로, 기업들은 기업들대로 사활을 걸고 비정규직 문제를 주시하고 있다.

이상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바꾸기 위해 정부와 대기업이 고용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경기변동에 민감한 기업현실과 노동시장에 가져 올 파장을 잘 따져 부작용을 최소화 하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라고 하면 주로 대기업들의 경제력 집중과 남용에 대한 규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가 경제민주화와 어떻게 연결되나.

이상호: 경제민주화의 궁극적 목표는 모든 경제영역에서 공정과 정의의 원칙을 세워 경제주체들이 자신의 권리와 책임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다. 재벌 총수 일가의 전횡을 막기 위해 재벌지배구조를 민주적 의사결정구조로 바꾸는 게 필요하듯, 노동시장의 차별과 배제를 극복하고 공정한 고용계약과 정의로운 보상체계가 구축돼야 한다는 점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경제민주화의 중요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

변양규: 공정과 정의의 원칙을 세우자는 취지는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현재 정치권이나 노동계에서 주장하는 근로자 보호방식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깊게 생각해 봐야 한다. 정규직 보호는 그대로 둔 상태에서 파견근로자 규제 같은 비정규직 보호를 더 강화한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결국 경기변동에 대응하기 편한 또 다른 고용형태를 찾게 될 것이다.

-통계청 고용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30%가 넘는다. 실제로는 절반에 육박한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비정규직이 많은 건 사실인데, 사용자측은 정규직 고용시장의 경직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정규직을 과도하게 보호하니까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을 늘릴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상호: 사실과 다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고용보호에 대한 조사지표인 고용보호입법지수(EPL)를 보면 우리나라 노동시장 경직성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반면 비정규직 고용보호는 최저수준에 가깝다. 결국 비정규직 문제는 고용시장 문제가 아니라, 고용 관련 법제도의 미비점을 악용하는 사용자의 전략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변양규: EPL이 그렇게 나타난 것은 각국마다 다른 사정을 감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나라에는 외국에 없는 퇴직금 같은 '해고비용'이 있다. 2000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헤크먼 시카고대 교수가 해고비용까지 포함해 고용 경직성 수치를 만든 게 있는데, 우리나라는 남미 국가들보다 더 상위에 랭크 돼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의 고용경직성은 국제적으로 봐도 아주 높은 수준이다.

이상호: 퇴직연금 부분을 말하는 것 같은데, 유럽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또 해고 보상금, 전직 및 재취업 알선 등 안전망이 있는 유럽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고용안전망은 유명무실할 정도다.

-그렇다면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상호: '나쁜 일자리'인 비정규직을 '좋은 일자리'인 정규직으로 전환해줘야 한다. 그걸 촉진하는 정책과 입법이 필요하다. 외환위기 이후 15년 동안 수많은 정규직 일자리가 비정규직 일자리로 대체돼 왔다. 그만큼 고용의 질은 떨어졌고, 노동자의 처우는 악화됐다. 정부와 대기업들은 고용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인식해야 한다.

변양규: 큰 틀에서는 공감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기업이든 근로자든 특정 그룹만을 위하는 입법은 굉장히 위험하다. 현행 비정규직 보호법만해도 애초 의도자체와 달리 혜택이 고르지 않았다. 비정규직 중에서도 기간제 근로자들은 상당 부분 수혜를 받은 반면에 파견이나 용역 같은 비전형 근로자들은 고용이 악화되고 소득도 감소하는 부작용이 생기지 않았나. 입법화를 할 때는 기대효과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최근 현대자동차가 8,000명 사내 하청근로자 가운데 3,000명을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한다고 발표했다. 사측은 만만치 않은 인건비 추가부담에도 불구하고 대승적 차원에서 내린 결단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노조측은 핵심을 비켜간 '꼼수'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상호: 현대차는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라고 주장하지만, 대상자들은 이미 근속년수가 7~10년 되는 30대 초ㆍ중반의 근로자들이다. 비노조원인데다 친기업적 성향인 이들을 신규채용 형식으로 하는 거로 봐야 한다. 더 문제는 정년퇴직자로 인한 자연감소분을 채우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인데, 이렇게 되면 청년 신규채용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변양규: 현대차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실천했다는 것 자체도 평가해줘야 한다. 어떻게 모든 근로자를 정규직화한다는 말 인가. 하청 근로자를 써 온 자체가 잘못이기 때문에 2년도 안 된 근로자 전체를 정규직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은 기업들에게 하청고용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모든 근로자가 정규직이 되어 해고 없이 높은 급여와 복리후생을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현실상 그건 불가능한 것 아닐까.

이상호: 현재 대기업들은 '사용사업주-고용사업주-근로자(하청노동자)'로 이뤄진 3각 관계를 악용하고 있다. 현대차만해도 사내 하청 근로자 1인당 2,000만원이 든다고 가정할 때 1,500만원 정도가 근로자에게 임금으로 지급되고, 나머지 500만원은 하청업체 사장에게 사례비로 간다. 일반적으로 총 사내하청 인건비의 30% 이상이 소개비로 빠지는 거다. 비용 탓이 아니라 결국 직접고용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사측의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변양규: 경기가 좋아 일감이 많으면 채용을 늘려야겠지만 경기가 나빠지면 일자리를 줄일 수 밖에 없는 게 경영현실이다. 줄이지는 못하고 늘리라고만 한다면 기업들이 어떻게 버티고 글로벌 경쟁을 하겠는가. 만약 사내하청에 대해 파견 사용 사유 제한 등 강경 입장만 내세우면, 기업은 아예 사외하청을 준다든지 하는 더 열악한 고용을 찾게 될 것이다.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현실과 부작용을 고려한 입법이 필요하다.

정리=이성기기자 hangil@hk.co.kr

■ 비정규직이 전체의 30% 넘어… 대선 앞둔 정치권 '최대 이슈'로

외환위기 이전까지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고용형태는 대부분 정규직이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체제 하에서 노동시장의 탄력성을 높이는 쪽으로 개혁이 진행되면서 비정규직이 크게 증가, 전체 임금근로자 가운데 비정규직 비중은 꾸준히 30%대를 훨씬 웃돌고 있다.

물론 고용 없는 성장 때문에 질 좋은 신규 일자리가 나오지 않는 탓도 있다. 하지만 기업들이 경기변동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기간제ㆍ시간제ㆍ파견제 등 여러 형태의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을 늘린 게 가장 큰 원인이다.

근로기준법과 비정규직 보호법 등 현행 법에도 비정규직 '보호장치'가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정규직과의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란 상식이 통하지 않는데다, 경영상 이유 등 갖은 구실로 사용자측이 해고의 칼날을 언제 들이댈지 모른다는 게 문제다.

이런 이유에서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모두 노사관계 최대 현안인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 실질적인 차별 해소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새누리당의 경우 19대 개원 이후 제1호 법안으로 파견근로자보호법 개정안(이한구 의원)을 발의했고, 민주통합당 역시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9개 법률 개정안'에 파견근로자보호법률안(은수미 의원)을 당론으로 포함시키는 등 정책 경쟁이 치열하다.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여야의 주요 법안만 봐도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법률 ▦노동위원회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법률 ▦파견근로자보호 법률 등 여럿이다. 이 법안들은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동일임금 원칙 명문화 ▦경영상 해고 요건 강화 ▦반복적인 차별 행위에 대해 징벌적 손해 배상제 실시 등을 담고 있다. 노동계의 숙원인 고용 안전성을 확보해주고 정규직과의 임금 차별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이다.

한편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은 2010년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이 통과시킨 노동 관련 법안을 원천 무효화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을 금지한 '타임 오프제'폐지와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 방안을 삭제하는 내용이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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