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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장준하, 신화와 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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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장준하, 신화와 미신

입력
2012.08.2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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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1918~1975)의 삶과 죽음에 얽힌 신화가 되살아났다. 그는 사후 37년 만에 완전히 육탈(肉脫)한 유골로 역사의 표면에 다시 떠올랐다. 엄혹한 유신 시대, 일본 장교 출신 독재자에 희생된 광복군 출신 민주투사의 죽음의 의혹을 밝히라는 외침과 함께 다가왔다.

그러나 그 울림은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독재자의 딸 박근혜가 그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억지 주장이 고인을 기리는 마음을 앗아간다. 청소년기에 막연히 우러러 본 거인에 대한 기억을 억누르게 한다. 세월 속에 빛 바랜 신화까지 정권 다툼에 이용하는 그악스러운 정치에 오히려 역겨움을 느낀다.

내 또래는 대개 1960~70년대의 독보적 지식인 잡지 를 통해 장준하를 만났다. 그는 도저(到底)한 글과 말로 어두운 시대의 지성과 양심을 일깨웠고, 치열한 반독재 투쟁에 앞장섰다. 게다가 그는 일본 학병에서 탈출해 고난 끝에 광복군에 합류한 특별한 이력을 갖고 있었다. 함께 탈출한 동지 김준엽과 함께 미 CIA의 전신 0SS의 특수 훈련을 받고 국내 진공을 준비하다 광복을 맞았다. 순수한 민족주의 감정을 지닌 청소년들에게 영웅 신화로 새겨질 만 했다.

1975년 8월, 그가 등산 도중 추락사한 모습으로 발견됐을 때 독재 정권에 의한 타살설이 나온 것은 자연스럽다. 영웅의 돌연한 죽음은 음모설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가 죽음에 이른 정황도 실족사로 선뜻 믿기 어려운 대목이 있었다.

법대 4학년이던 나도 정보기관이 연루됐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유신 체제에 맞선 재야의 거목, 그 '행동하는 양심'의 죽음은 유신 체제의 모순이 낳은 비극이라고 안타깝게 여겼다. 그러나 1980년대와 90년대, 언론이 그의 죽음을 재조명했을 때 큰 관심을 기울이진 않았다. 언론의 추적은 검증되지 않은 추측과 추리를 덕지덕지 덧붙인 수준을 넘지 못했다. 2000년 대 들어 새삼 진실 찾기에 나선 정부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도 "직접 사인인 두개골 골절의 원인을 추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장준하는 그렇게 '달빛에 물든 신화'로 역사 속에 묻힌 듯했다.

그 신화를 다시 햇볕 아래 끄집어낸 이들의 주장은 언뜻 그럴 듯하다. 유골 머리뼈 오른쪽에 직경 6cm의 둥근 함몰 상처가 새로 발견됐다는 것이다. 그 형태로 보아 추락사로는 절대 생길 수 없고, 누군가 망치나 해머 같은 둔기로 뒤에서 옆머리를 타격해 치명상을 입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큰 하자(瑕疵)가 있다. 1975년 당시 재야를 대표해 고인의 시체를 검안한 의사 출신 야당 인사가 "직경 2 cm 크기 후두부 함몰이 직접 사인"이라고 증언한 사실을 애써 외면하거나 짐짓 숨기고 있다.

민주당 지구당위원장을 지낸 그 의사는 뒷머리 함몰 상처를 타살 근거로 보았다. 당시 검찰 수사도 후두부와 골반 뼈 골절을 확인했다. 다만 추락사로 추정한 결론이 다르다. 그렇다면 새로 발견된 측두골 함몰 흔적은 고인의 사후, 유골 상태에서 생긴 것으로 봐야 사리에 맞다. 유해 이장(移葬) 과정에서 삭은 유골이 손상된 것으로 추정할 만하다.

유족들이 거듭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또 다시 진상조사위를 구성하고 지레 박근혜 책임론을 떠드는 것은 우습다. 이제 와서 뭘 새롭게 밝힐 수 있다고 진정으로 믿는지 의심스럽다.

더욱 한심한 건 진보 언론이 마치 새로운 증거가 드러난 양 의혹을 부추기는 행태다. 지난 30여 년의 복잡한 사인(死因) 논란을 올바로 되짚지 않은 채 곧장 새로운 의혹으로 치닫는다. 합리적 근거가 없는 것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은 미신이다. 그걸 일부러 전파하거나 조장하는 건 혹세무민이다. 진실과 정의를 내세우는 언론이 혹세무민으로 정권 다툼에 힘을 보태거나 스스로 그 싸움에 나서는 것은 개탄할 일이다.

강병태 논설고문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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