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서기의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에게 사형과 함께 형 집행을 유예하는 판결이 내려졌다. 태자당 대표주자의 부인에게 사형을 선고함으로써 엄정한 법치를 강조하고, 동시에 형 집행 유예를 통해 권력 교체기의 민감한 국내 정치상황 및 영국과의 외교관계를 고려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 중급인민법원은 20일 선고공판에서 살인죄로 기소된 구카이라이에게 사형유예를 선고했다. 공범으로 기소된 구카이라이 집안의 집사 장샤오쥔(張曉軍)에게는 징역 9년형이 내려졌다.
사형유예는 사형선고 뒤 2년간 수형자의 반성여부 및 태도 등을 고려해 징역형으로 감형해 줄 수 있는 중국의 사법제도다. 사형유예를 받은 뒤 사형집행이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어 구카이라이는 목숨을 건진 것으로 보인다. 독일 dpa통신은 "구카이라이가 최소 9년은 복역해야 가석방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9일 열린 첫 공판에서 혐의를 인정한 구카이라이는 이날 상소 의사가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2월 왕리쥔(王立軍) 충칭 부시장의 미국 망명 시도로 촉발돼 6개월 동안 중국 정치권을 뒤흔든 '보시라이 사건'은 이날 판결로 일단락됐다.
이번 1심 선고는 형식상 법원의 독자적 판단이지만, 사건의 중요성과 형사분야에서 사법부 독립이 완벽하지 않은 중국 현실을 고려할 때 공산당 지도부의 의중이 전적으로 반영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최고 지도층 인사가 연루된 고의적 살인행위를 엄벌하면서도 구카이라이가 지도부 권력 다툼의 희생양일 수 있다는 동정여론 등을 감안한 것으로 분석된다. 보 전 서기의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면서도 사형에는 반대했던 영국 정부의 입장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주중 영국대사관은 이날 법원 판결 직후 "중국 당국이 헤이우드의 사망에 책임이 있다고 판명된 사람들을 재판에 회부했다는 사실을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나치게 봐주는 판결을 내렸다면 (보시라이 등) 사건 연루자에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고, 가혹한 판결을 내렸다면 정적 가문에 대한 정치적 보복으로 비쳤을 것"이라며 "중국 정부의 고심이 컸을 것"이라고 전했다.
결국 공산당 간부의 미국 망명이라는 '중국적이지 않은' 돌발 사건으로 촉발된 희대의 정치스캔들은 관련자들의 입장을 두루 고려하는 중국적 방식으로 매듭지어진 셈이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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