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전쟁에서 인권을 유린하는 만행을 저지른 사람까지 그대로 둔다면 그것은 정의관념에 반합니다. 이것이 국제형사재판소의 존재이유입니다.”
20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시민과 법관 상대로 ‘국제형사재판의 최근 동향’이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연 권오곤(59) 국제형사재판소 재판관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머물다가 여름 휴가를 맞아 일시 귀국했다.
옛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는 근대 이후 최악의 민간인 집단학살로 손꼽히는 보스니아 내전의 전범들을 심판하는 곳이다. 권 재판관은 보스니아 학살을 주도한 밀로셰비치 전 세르비아 대통령과 1급 전범인 라도반 카라지치 전 스르프스카 공화국 대통령 처럼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전범들에 대한 재판을 맡기도 했다.
그는 “국제형사재판소는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국제사회가 얻은 교훈”이라며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쟁을 완전히 막지는 못하더라도 전쟁에서 상대방에게 유독가스를 쓰거나 미성년자를 군인으로 동원하는 일, 상대방에 비해 지나치게 큰 무력을 동원해 학살하는 일은 막아야 합니다.”
그는 또 최근 국제사회에서 국제재판이 갖는 중요성이 커지고 있으나, 우리 사회는 너무 무심하다고 지적했다.
권 재판관은 국제재판에 대한 관심이 적다 보니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비해 각 국제재판소에 배치된 국내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점 역시 아쉬워했다.
“최근 일본과의 독도 영유권 갈등 때문에 국제사법재판소가 더욱 주목을받고 있잖아요. 아시아 출신 재판관 세 자리 중 두 자리를 이미 중국과 일본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은 한자리는 우리가 꼭 후보자를 내야 합니다.”
일본과의 독도 영유권 분쟁에 관련해선 “우리가 실효적 지배를 하는 상황에서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국제재판에 이 문제를 가져갈 필요가 없다고 본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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