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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시집 '훔쳐가는 노래' 낸 진은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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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시집 '훔쳐가는 노래' 낸 진은영 시인

입력
2012.08.20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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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에 연재된 '시로 여는 아침'을 통해 깊이 있는 안목, 유려한 독법, 청신한 언어를 선보인 진은영 시인이 세 번째 시집 <훔쳐가는 노래> (창비 발행)를 냈다. 새로운 감각과 형식을 통해 2000년대 시단의 '뉴웨이브'(평론가 신형철)로 주목받은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우리시대의 정치, 사회적 고민을 담백한 시로 담아낸다. 진씨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를 굳이 숨기려하지 않았다"고 했다.

진씨의 시가 정치, 사회적 맥락으로 해석되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용산참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 일련의 시국사건을 겪고 젊은 작가들이 거리로 나왔을 무렵이다. 밀실 속 젊은 문인들은 시국선언인 6ㆍ9작가선언 이후, 용산참사 1인 시위, 두리반 낭독회 등 정치, 사회적 활동을 통해 새로운 고민을 갖게 됐다. '첨예하게 미학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작품을 쓰고 싶다'는 욕망은 문학계 최대 이슈가 됐고, 진씨가 2008년 계간지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발표한 산문 '감각적인 것의 분배'는 이런 고민을 드러낸 상징적인 글이 됐다.

진씨 역시 이런 활동을 통해 변화를 겪었다. 새 시집은 이런 변화의 지점에서 쓰인 시를 담았다. 그는 "(이번 시집은) 여러 종류의 만남에 영향을 받았다"며 "아름다운 동시에 미학적일 수도 있는 코뮌의 구성원이 되려는 걸음을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몇 년 간 정치 사회적 의미를 지닌 활동들을 했는데, 그런 '목적의식적' 활동들이 어긋나면서 슬픔, 놀람, 절망,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되더군요. 삶이 우리로부터 뭔가 훔쳐간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 약탈의 순간이 사랑의 순간과 겹쳤어요.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 그런 결과의 연쇄를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요."

표제작을 '훔쳐가는 노래'로 정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제목은 동시에 첫 시집에 오마주를 바쳤던 최승자를 비롯해 백석, 기형도, 김남주, 영국 시인 오든까지 다양한 선배들의 작품을 전유해 미학적 갱신을 시도한 자신의 시작(詩作)을 은유하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시집에 실린 시는 이전 두 권의 시집에 비해 이야기적 성격이 한층 강하다. 4대강, 한진중공업 파업, 용산참사 등 일련의 사회적 사건에서 모티프를 딴 시는 부제목, 인용구절 등을 통해 그 맥락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고 현실 문제를 직설적으로 묘사하거나 고발하는 80~90년대 리얼리즘 문학의 한계를 답습하지는 않는다. 철학적 사유와 성찰이 깃든 매혹적이면서도 간명한 시편이 저마다 강렬한 인상을 준다.

<세상에서 나를 제일 증오하던 이가 죽었다 그는 다시 태어나 내 몸이 되었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했던 죽어 강이 나의 정오, 자정 부드러운 머릿결이 모든 계절로 벌어진 과일과 별의 향기를 뿌리며 네 개의 강으로 지나갔다> ('망각은 없다' 의 일부)

이 목소리가 공감대를 얻는 것은 시인 개인의 경험을 빌어 말하기 때문이다.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를 비롯해 '멸치의 아이러니' '그 머나먼' 등은 한 사람의 철학도가 시인이 된 사연, 최근 2,3년간 시인으로 고민한 지점을 보여주는 시다.

<엘뤼아르보다 박노해가 좋았다 더 멀리 있으니까 나의 상처들에서 연필보다 망치가 좋다, 지우개보다 십자나사못 성경보다 불경이 좋다 소녀들이 노인보다 책상에서 분노에게서 나에게서> ('그 머나먼' 중 일부)

시인은 "시와 노래는 많이 훔쳐갈수록 아름다워지는 법이다. 제가 드리지 않았지만 독자가 제게서 훔쳐가는 걸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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