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배임 등) 혐의로 징역 4년ㆍ벌금 51억원의 형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됐다. 대기업 총수 최초의 법정구속을 둘러싼 세상의 궁금증에 대한 재판부의 설명은 단호했다. "유죄 확신이 들면 법정구속이 일반적 재판 관행이어서 법정구속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예외적인 것"이라고 밝혔다. 재벌 총수에 으레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되던 해묵은 공식이 깨어졌는지는 앞으로의 항소심 결과에 달렸다.
■ 앞서 두 차례 본란에서 재벌 총수의 배임ㆍ횡령죄에 대한 사회적 비난의 정도, 바꿔 말해 총수의 규범준수 책임을 논했다. 재벌 총수가 실질적으로 누리는 막강한 힘에 비추어 법적 책임 또한 커서 마땅하고, 그런 실질 잣대를 적용하면 공무원 못잖게 무거운 법정형을 부과하는 입법 논의도 가능하다는 취지였다. 이번 1심 판결에서 눈에 띈 것도 형식적 증거로는 도저히 다 채울 수 없는 '배임 행위'의 입증을 실질적 증거로 메운 재판부의 태도였다.
■ 재판부는 검찰이 압수해 제출한 내부 문건을 들어 한화그룹 계열사의 '위장 계열사' 지원과 저가 자산매각 등이 김 회장 주도로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문건은 한화그룹 내부에서는 김 회장을 CM(체어맨)이라고 부르며, 'CM은 신의 경지로서 절대적 충성의 대상이며 본부조직은 CM의 보좌기구에 불과하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를 근거로 재판부는 한화그룹 전체가 김 회장을 정점으로 일사불란한 상명하복의 보고ㆍ지휘 체계를 이루고 있다는 보았다.
■ 상식으로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재판부 판단 손실액만도 3,024억원에 이른 대규모 자금이 총수의 뜻과 무관하게 움직이기는 어렵다. 다만 이는 심증을 굳히는 방증일 뿐 직접적 물증은 아니다. 김 회장의 행위 관여를 입증할 문서나 녹음, 관계자 증언의 확보는 기대난이다. 항소심은 이를 둘러싼 '형식-실질' 공방으로 뜨거울 전망이다. 그 결과가 어떻든, '실질 판단'의 물꼬는 이미 터진 셈이고, 총수의 책임 또한 따라서 커지고 있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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