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장준하 선생의 사인을 둘러싼 공방이 재점화했다. 1975년 고인이 의문사한지 37년,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에서 모두 3차례에 걸친 정부차원의 조사를 마무리한 지 8년 만이다. 최근 선생의 유해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두개골에 지름 6㎝ 가량의 원형함몰 상처가 드러난 것이 계기가 됐다. 민주당은 즉각 진상규명위원회를 발족하고, 줄곧 타살 주장을 굽히지 않아온 유족 측도 국가차원의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광복군 출신의 항일독립운동가이며 이승만ㆍ박정희시대의 반독재투쟁가이자 걸출한 사상가인 장준하 선생은 이념을 넘어선 한국 현대사의 거목이라는 평가에 누구도 이론이 없다. 선생의 돌연한 사망시점은 공교롭게도 그가 한창 유신정권과 첨예하게 각을 세우고 있던 시기였다. 여기에 누가 봐도 석연치 않은 사망 뒤처리, 수사과정은 등산 중 실족사라는 최초 정부발표를 믿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수 차례 재조사에서도 당초의 결론이 수정되지 않은 것은 부검 없이 사망 당시 곁에 있었던 한 명의 진술만이 유일한 수사단서였던 때문이었다.
그 유일한 목격자는 여전히 실족사 주장을 바꾸지 않고 있지만, 이번엔 결정적으로 두부함몰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물론 전문법의학자들 간에도 함몰이 추락에 의한 것인지, 외부 타격에 의한 것인지 아직은 의견이 모아지지 않고 있지만 적어도 사망원인을 보다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처음으로 생긴 셈이다. 장준하 선생의 역사적 비중과 위상을 감안한다면 재조사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민주당이 논리가 직접 닿지도 않는 박근혜 책임론에 후보불가론까지 곧바로 들고 나선 것은 뻔한 정치적 이득 챙기기지만, 새누리당이 "이미 조사가 마무리된 사안"이라며 외면하려 드는 태도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선생의 사인 규명은 현대사의 공백을 복원하는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일개 후보나 정파의 유불리 차원으로 다뤄선 안 될 사안이라는 뜻이다. 객관성, 신뢰성을 갖춘 전문가들의 재조사가 이뤄지도록 방안을 적극 마련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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