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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장쩌민의 짜장면과 한국 캐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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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장쩌민의 짜장면과 한국 캐디

입력
2012.08.1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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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원조인 짜장면을 어떻게 한국이 더 맛있게 만드느냐."

1995년 11월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이 방한했을 때 한 말이다. 중국 최고 지도자로는 처음 서울을 방문한 그는 장충동의 신라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긴장감에 입맛을 잃었을 장 전 주석을 위해 짜장면을 준비했다. 생각지도 않은 고국의 음식을 접한 그는 달짝지근하며 중독성이 강한 맛에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퍽퍽하고 짜기만 한 중국 원조 짜장면과 달리 입에 착착 달라붙는 한국식 짜장면을 처음 맛 봤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그는 "이게 정말 짜장면이냐"며 몇번이고 되물은 뒤 "천하의 산해진미를 모두 먹어 보았으나 이런 맛은 처음"이라고 감탄했다. 장 전 주석은 수행원 등에게 "중국 음식조차 한국인의 손을 거치면 이렇게 훌륭해지지 않느냐"며 "중국은 한국에서 배울 게 많다"고 했다. 장 전 주석은 제주도 방문을 마친 뒤 곧바로 귀국하려다 다시 김포로 가 또 한번 짜장면을 맛본 뒤 돌아갔다는 게 외교 비사다.

장 전 주석의 짜장면 일화를 꺼낸 것은 24일이 한중 수교 20주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수교 이후 한동안 중국은 한국식 짜장면을 본받듯 한국에서 뭐든 배워가려 했다. 한국을 모델로 삼았고 매사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가르치는 입장에 선 우리는 득의양양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은 오래 가지 못했다. 결정적 계기는 1997년 외환위기였다. 무분별한 개방으로 국제 환투기 세력에 의해 한 국가가 발가벗겨지는 것을 똑똑히 목도한 중국은 한국모델론을 급히 수정했다. 배울 것과 타산지석으로 삼을 것을 나눴고 한국에 대한 태도를 조금씩 바꿨다. 그래도 한국이 전자, 자동차, 조선 등 주요 업종에서 기술적 우위에 있던 2000년대 초반까진 한국 학습 분위기가 유지됐다. 그러나 그 뒤로는 이마저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한국에서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거침없이 내 뱉는 중국인이 늘고 있다.

수교 20년 만에 한중 관계는 이렇게 역전됐다. 이런 추세라면 20년 후 한중 관계를 생각하는 것이 끔찍할 정도다. 한국은 중국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렇다고 너무 주눅들 필요는 없다. 중국은 사실 가능성도 크지만 문제도 많은 나라다. 아직은 선진국이라 할 수 없는 부문이 적지 않다. 양이나 크기로는 우리가 경쟁할 수 없지만 질과 생산성으로 승부하면 얼마든 해 볼 만한 구석이 많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를 가장 잘 대변하는 게 골프 캐디다. 베이징에서는 대개 골퍼 한 사람당 한 명의 캐디가 붙는다. 4명이 한 팀을 이루면 캐디도 4명이 붙는다. 한 명의 캐디가 한 명의 손님을 챙기는 것인데 그럼에도 거리를 잘못 불러주고 찾아야 할 공을 잃어버릴 때가 많다. 반면 한국의 캐디는 혼자서 골퍼 4명을 다 챙긴다. 4명의 거리를 정확하게 불러주고 딱 맞는 클럽을 가져다 주며 퍼팅라인까지 감안해 공을 놓는다. 일부 캐디는 점수표에 그림까지 그리며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운다. 중국 캐디 4명에게 줘야 하는 캐디피의 합보다 한국 캐디 1명이 받는 캐디피가 많다는 점을 감안해도 한국과 중국의 경쟁력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과 중국은 이처럼 다른 점이 많다. 문제는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알려 하지 않는 데 있다. 한국은 중국을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해 알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은 중국인도 다 모를 정도로 넓고 다양하며 시시각각 변한다. 잘 알지 못하니 오해하고 폄하하거나 반대로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알면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하면 이길 수 있다. 20년 후의 한중은 서로를 좀 더 이해하는 사이가 돼 있길 기대한다.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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