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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산층이 아니무니다" 통계·현실의 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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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산층이 아니무니다" 통계·현실의 괴리

입력
2012.08.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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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김모(39)씨는 지난 주말 고교 동창 3명과 2년 만에 회포를 풀었다. 술이 몇 순배 오가고 자연스레 정치(대선)와 경제(살림살이) 얘기를 안주거리로 삼자 급기야 사소한 논쟁이 붙었다.

증권사에 다니는 친구: “다들 어렵다고 해도 우린 500(만원)이상 버니 중산층이지.”

김씨: “아파트 대출에 아이 교육비 빼면 월급이 절반으로 뚝 떨어져. 게다가 물가는 오르는데, 월급은 그대로야. 돈 때문에 아이 엄마랑 다투는 일도 늘었고, 1년 넘게 옷 한 벌 못 사 입는 처지에 중산층이라니, 난 아니다.”

교사인 친구: “우리 집이 중산층인지는 모르겠지만 맞벌이 부부 교사라 겨우 버티는 거지, 우리도 외식 안 한지 꽤 됐다. 집값도 많이 떨어졌고.”

공무원 친구까지 가세한 갑론을박이 한동안 이어졌다. 결국 세상엔 자신들보다 어려운 형편에 놓인 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은 뒤 어수룩한 중산층 논쟁은 마무리됐지만 뒷맛은 씁쓸했다. 자정을 넘긴 시각 불콰해진 김씨는 “적금 포기한지는 오래됐고, 종신보험도 깰까 고민 중”이라며 마지막 버스를 타러 달려갔다. 다른 친구들의 발걸음도 무거워 보였다.

경기 침체와 팍팍한 세상살이에 짓눌린 중산층의 자기 부정이 늘고 있다. 소득분포 통계상 중산층에 속하는 게 분명한데도, 스스로를 저소득층이라 여기는 것이다. TV 코미디프로인 ‘개그콘서트’의 갸루(girl의 일본식 발음)상에 빗대면 “나는 중산층이 아니무니다”를 외치는 중산층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19일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전국 20세 이상 남녀 1,011명을 설문한 결과,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답한 비율은 46.4%에 그쳤다. 지난해 통계청이 집계한 가처분소득 기준 중산층 비중(64%)과 비교하면 17.6%포인트나 떨어지는 수치다. 반면 ‘저소득층’이라는 응답은 전체의 절반(50.1%)을 차지해 실제 통계에 잡힌 저소득층 비율(15.2%)보다 3배 이상 높았다.

응답자들이 생각하는 주관적인 중산층의 월평균 소득은 4인 가족 기준 494만6,000원이었다. 1998년 조사(248만5,900원)보다 2배 가량 늘었으나 같은 기간 명목 1인당 국민소득이 3배 정도 늘어난 걸 감안하면, 소득 기대치가 높은 편은 아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중산층의 자신감이 무너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생활도 쪼그라들었다. 10명 중 6명(60.6%)은 외식을 이전보다 줄였고, 10명 중 3명(29.3%)은 적금이나 보험을 깼고, 절반 이상(52.5%)은 대중교통 이용을 늘린 것으로 조사됐다. ‘집 크기를 줄이거나 싼 집으로 이사하려 한다’는 응답은 외환위기 직후(1998년)보다 3배 가량 늘었다.

특히 응답자 10명 중 2명(19.1%)은 ‘자신의 계층이 전보다 하락했다’(고소득층→중산층, 중산층→저소득층)고 응답했다. 중산층에서 저소득층으로 떨어진 원인은 소득 감소(32.7%), 부채 증가(17.6%) 등을 꼽았다. 연령별로는 20대는 불안한 일자리, 30대는 부채 증가, 40대는 과도한 자녀교육비, 50대는 소득 감소 등이 경제적으로 가장 큰 걱정이었다.

더욱 암울한 건 거의 대부분(98.1%)이 ‘앞으로 계층 상승은 갈수록 어렵다’는 비관적 전망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유로는 양극화 진행(36.3%), 체감경기 부진(21.5%), 좋은 일자리 부족(12.1%), 과도한 부채(11.4%) 등 우리 경제가 풀어야 할 숙제들이 모두 거론됐다.

김동열 수석연구위원은 “중산층을 튼튼하게 하려면 20대 물가안정과 일자리 창출, 30대 주거안정과 가계부채 연착륙, 40대 사교육부담 완화, 50대 이상 정년 연장과 노년일자리 창출 등 세대별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도 이날 실제 소득기준이 중산층에 속하는 10명 중 3명(32%)은 스스로를 저소득층으로 여긴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사회 양극화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 계층 귀속 의식을 낮춘다고 풀이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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