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이 다시 제기된 가운데, 신경외과 전문의 다수는 장준하 선생의 두개골 골절이 둔기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을 보였다. 장준하기념사업회가 지난 16일 공개한 장준하 선생의 두개골 유골 사진을 분석한 뒤 내린 평가다. 반면 법의학자들은 외상의 원인을 결론짓기에 앞서 종합적인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추락에 의한 골절이라면 둥그런 형태의 골절이 생길 가능성은 아주 낮다"며 "둔기에 의한 골절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수도권 한 종합병원 신경외과 교수도 "장 선생의 두개골 외상은 추락이 아닌 직접 가격에 의한 골절"이라고 봤다. 이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장 선생이 비탈에서 떨어졌다고 가정한다면 둥그런 형태의 두개골 골절이 생기기 위해서는 추락하는 도중에 바위와 같은 돌출 부위가 있어 그곳에 머리가 세게 충돌했어야 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장 선생 유골의 다른 부분에 골절 등 외상의 흔적이 없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의 또 다른 대학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사진에 나타난 골절은 굉장히 강한 충격에 의해 생긴 복합함몰골절"이라며 "골절의 형태가 둥근 걸로 봐서 둥근 쇠망치와 같은 것으로 때렸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상 원인에 대해 성급하게 결론 내려서는 안 된다"며 "드물기는 하지만 추락에 의해서도 원형의 복합함몰골절이 생길 수 있다. 추락이냐 아니냐를 결론 내기엔 자료가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서울의 한 의대 법의학부 교수는 "골절의 원인을 정확하게 추정하기 위해서는 현재 남아있는 유골의 형태와 당시 현장 상황 그리고 숨졌을 당시 시신 상태 및 피부 색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두개골이 함몰됐다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 만큼 불필요한 논란을 가중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수가 참여하는 기구를 꾸려 재조사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준하기념사업회는 이날 오전 경기 파주시 탄현면에서 장 선생의 유족과 정운찬 전 총리, 민주당 지도부와 재야 인사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준하공원 제막식 및 제37주기 추도식을 가졌다. 장준하공원은 지난해 8월 파주시 광탄면 나자렛공원에 있던 장 선생 묘역의 석축이 붕괴되면서 이장할 장소를 찾던 중 파주시가 용지를 제공하고 경기도가 예산 지원을 해 건립됐다.
장 선생의 유골 상태를 근거로 그의 죽음을 박정희 정권 당시 국가기관에 의한 명확한 타살이라고 주장한 기념사업회 측은 이날 국가 차원의 전면적인 재조사를 재차 요구했다. 기념사업회 측은 20일 오전 청와대를 방문해 진상 규명을 위한 전면 재조사를 요구할 계획이며, 정부가 요구를 거부할 경우 법의학자 등 전문가와 각계 인사들로 범국민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할 방침이다.
한편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장준하 선생의 사인은 조사가 마무리된 사안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박 전 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진상조사위원회에서 현장 목격자 등에 대한 조사가 그동안 이뤄지지 않았나. 그런 기록들이 있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의 발언은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4년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사건을 재조사한 후 장 선생 두개골의 골절이 생긴 원인을 추정하기 어렵다고 발표한 사실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파주=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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