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노트ㆍ오키나와 노트/오에 겐자부로 지음ㆍ이애숙 옮김/
삼천리 발행ㆍ204쪽ㆍ208쪽ㆍ각 권 1만2,000원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는 반전평화운동을 비롯해 다양한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행동하는 양심'으로 꼽힌다. 1958년 23세의 나이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며 문학에 두각을 나타냈지만, 작가 스스로 소설가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을 때는 두 가지 시련을 직간접적으로 겪으면서다. 회고록<오에 겐자부로, 작가 자신을 말하다> (문학과지성사)에서 그는 그토록 기다렸던 첫 아들이 뇌장애를 가졌다는 소식을 들은 뒤 히로시마로 떠났고, 그곳에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거대한 아픔을 겪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인생과 문학을 다시 생각하고 돌아와 소설가로 자기의 길을 확실하게 걷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오에>
1965년 일본에서 발간된 <히로시마 노트> 는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 투하 20년 이후 살아남은 자들의 진술을 담은 르포르타주인 동시에 한 사람의 범인(凡人)이 위대한 작가로 태어나는 과정을 고백한 회고록이다. 작가는 1963년 일본의 반핵, 평화운동을 이끌었던 원수협(원수폭금지일본협의회)이 중앙 정계와 공산당 계열의 정치적 계산에 따라 분열하는 상황을 소개하며 이 정쟁에 따라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들이 정치담론에서 주변화되고 배제되는 실상으로 서두를 연다. 그리고 65년까지 여러 차례 히로시마를 다시 찾으며 다양한 사람들의 증언을 듣고 기록한다. 원폭 피해자들의 개별적 고통은 작가 개인의 고통과 맞물려 한층 더 우울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이 운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보여준 용기, 희망, 삶에 대한 성실함과 높은 수준의 정신적 경지를 알게 된다. 작가는 이들을 '모럴리스트'(78쪽)라 부르며 이들의 고통이 일본의 역사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것이 어떻게 인간적 위엄으로 승화되는지, 장애인 자식을 둔 자신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유되는지를 담담한 필체로 엮어낸다. 히로시마>
이 책을 낸 후 4년 만에 쓴 <오키나와 노트> 는 1969년 오키나와 반환운동에 평생을 바친 후루겐 소켄 씨의 장례식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일본 본토 사람인 자신과 오키나와 사람들 사이에 '명확한 벽'(50쪽)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오키나와는 중국과 대만, 조선과 일본 본토를 연결하는 류큐왕국으로 17세기까지 지속되다 일본 통일 직후인 1609년 일본 본토의 침략을 받고 일본 지배를 받게 된다. 19세기 메이지 시대에 아예 오키나와현으로 강제 편입됐고, 태평양전쟁시대에 오키나와 전쟁으로 10만 명이 학살된 후, 동아시아 최대의 미군기지를 보유한 섬으로 재편되는 등 비극적인 역사를 갖고 있다. 오키나와>
작가는 오키나와가 일본에 속한 것이 아니라, '(일본 역사의) 거대한 암흑을 지탱하고 있는 오키나와에 일본이 속해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그런 나라, 그런 일본인인 나 자신을 확인하기 위해서 (…) 나는 오키나와에 간다'(54쪽)고 말한다. 하지만 오키나와 전쟁 희생자 중 살아남은 자들은 드물다. 작가는 연구저서와 학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이 비극의 역사를 재현한다. 원폭 피해자들의 증언과 자신의 고통을 복원하며 상당한 수준의 사유를 이끌어낸 <히로시마 노트> 와 달리 <오키나와 노트> 는 작가 스스로 "갈팡질팡하는 문장 스타일" "피해망상의 징후"(147쪽)라 고백하듯, 추상적이고 난해한 논픽션이다. 전자가 원폭 피해자와 자신의 고통을 겹치며 동일화하고 있는데 반해, 후자는 자신을 본토 일본인으로 규정하며 오키나와 현지인들의 입장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듯하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오키나와전투 때 집단자결 문제로 2005년 일본 우익은 이 책을 출판한 이와나미 서점과 작가를 법원에 제소했고, 지난해 대법원에서 오에 겐자부로의 승소로 끝났다.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오키나와 현대사가 갖는 특수성은 동아시아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 한다. 이번에 처음 정식 계약을 맺고 국내 번역, 출간됐다. 오키나와> 히로시마>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