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빅토르 프랑클 지음ㆍ박원용 옮김ㆍ책세상 발행ㆍ212쪽ㆍ1만2,000원
1995년은 "20세기의 증인, 독자적인 심리 치료의 창시자.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남은 증인"이 90번째 생일을 맞는 해였다. 유태인으로서 <죽음의 수용소에서> , <삶의 의미를 찾아서> 등으로 고난의 시기를 증언했던 그가 31번째로 쓴 책(회고록)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이어 제3 빈학파로 불리는 독자적인 심리 치료법 '로고테라피'를 창안했던 빅토르 프랑클의 체취가 가득하다. 그는 빈 대학 의학박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하버드 대학 등의 교수를 역임한 석학이다. 삶의> 죽음의>
자신의 부모, 취미, 유머 감각 등 일견 사적인 이야기로 가득 찬 초입은 빈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어린 시절을 보낸 자로서의 자부심이 읽힌다. 당시 태동하던 '개인심리학'의 전도자로서 그곳 심리학계를 누빈 대목의 풍경은 유럽 상류 사회 특유의 지적 풍속도다. 의료심리학 등 당시 심리학의 새 물결을 선도하는 자로 학계의 중심으로 들어서던 그의 덜미를 잡죈 것이 나치의 대두였다.
"견디기 힘들었던 오전의 학대와 오후의 재즈 공연 사이의 간극"(142쪽)과 가스실을 바로 앞에 두고 삶과 죽음이 장난처럼 나뉘던 이야기 등 이 시기를 다룬 다큐물의 내용이 변주되는 것도 같다. 그러나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 "(전쟁 통에)잃어버린 원고를 다시 써야겠다는 의지 때문"(149쪽)이라는 대목은 큰 울림을 갖는다. 미국에서 새 삶을 얻은 후에 집필과 강연에 몰두하던 그는 하이데거 등 사상가들과도 교류했다. 철학, 취미, 안락사, 연대 의식, 늙는다는 것 등 생의 보편적 문제에 대해 깊은 사유를 펼칠 수 있었던 까닭이다. 50여장의 사진이 생생함을 더한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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