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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안철수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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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안철수의 '흔적'

입력
2012.08.16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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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이상하다.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면서 공익을 위해 쓰겠다는데 정부가 활동하지 못하게 막고 나섰으니 의아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칭찬은 못할 망정 회초리를 들었으니 말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자신의 연구소 주식을 바탕으로 장학 사업을 펼치겠다고 만든 안철수재단의 기부 계획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제동을 건 이야기다.

조금 더 이상한 것도 있다.

선관위는 이 재단에게 기부 행위를 하려면 안 원장과의 관련성을 최소화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재단 이름에서 '안철수'를 떼라고 하는 등 몇 가지를 주문했다. 하지만 안철수재단은 유감을 표명하면서 재단 개명은 불가하다고 맞섰다. 그러면서 개명할 바에는 선거 이후로 활동을 미루겠다는 뜻도 밝혔다. 기부 행위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에 '그럼 숨어서 하란 말이냐'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셈이니 어딘가 엉뚱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사람들도 있는 데 말이다.

비록 안 원장이 이미 재단 운영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안 원장 측의 유민영 대변인도 "재단 이름은 국민 공모를 통해 재단이 정했듯이 향후 활동 계획도 모두 재단이 정하는 것"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재단의 이 같은 움직임에 안 원장의 의지가 일절 반영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수백억원대 재산가가 한 푼을 더 벌자고 비리를 저지르고 유력 정치인이 부정한 돈으로 권력을 탐하기도 하는 세상이다. 이런 판에 자기 재산의 상당 부분을 사회에 내놓겠다는데 그만큼 훌륭한 인물이 어디 있겠는가. 공익을 위한 그의 정신을 훼손시킬 마음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그의 순수한 마음이 더 빛을 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실제 안 원장은 자기 재산의 사회 헌납에 앞서 미국으로 가서 '기부왕'으로 평가 받는 빌 게이츠에게 조언을 듣고 왔다. 컴퓨터 윈도우 프로그램 창시자인 빌 게이츠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자신의 부부 이름을 딴 빌앤멜린다게이츠 재단을 만들어 기부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1,000억 달러로 평가 받는 자기 재산 중 벌써 절반 가량을 기부했다. 우리 돈으로 50조원이다. 그는 또 세 자녀에게 각 1,000만 달러만 남겨 주고 나머지 재산은 모두 사회 봉사에 쓰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살아 있는 전설'이자 세계적으로 존경 받는 위인 반열에 오른 이유다.

여기까지는 안 원장과 흡사한 부분이 적지 않다. 전 국민에게 무료로 백신을 나눠주고 재산의 상당 부분을 사회에 내놓겠다고 하면서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키워주는 길잡이가 돼 있으니까 안 원장도 미국의 빌 게이츠처럼 우리나라의 보통 귀중한 자산이 아닌 것이다.

안 원장은 얼마 전 SBS TV 예능프로인 힐링캠프에 출연해 "이름을 남기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흔적을 남기는 것이 삶의 신조"라고 말했다. 이름을 남기기보다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게 도통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슴푸레 그가 뭘 지향하는지는 감이 잡힌다.

아직 분명한 태도를 밝히지는 않지만 안 원장의 목표점이 청와대에 맞춰져 있음을 많은 이들이 인지하고 있다. 그가 말한 흔적의 끝이 청와대인지, 흔적으로 가는 과정에 청와대가 하나의 중간 역으로 있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반드시 청와대를 거쳐야 삶의 흔적이 더 커지고 빛을 발하는 게 아니란 건 초등학생도 아는 얘기다. 오히려 승패 여부와 상관 없이 대선 출마 결정만 갖고도 지금까지 쌓아온 훌륭한 흔적이 심하게 퇴색될 가능성도 크다. 이 경우 그만한 국가적 사회적 손실도 없다.

어쨌든 안 원장은 삶의 신조대로 현재까지는 우리 사회에 매우 유의미한 흔적을 만들어가고 있다. 근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업적이다. 지금의 활동상이 부디 끝까지 그렇게 호(好)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세상 모든 이들의 마음 속에 잔잔한 흔적이 되고 있는 빌 게이츠가 미국 대선에 나간다는 이야기는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들어본 적이 없다.

염영남 정치부 차장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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