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열차 차창으로 끝도 없이 펼쳐지는 초원, 반복해서 모습을 드러내는 자작나무 숲을 보다 보면 어떤 노랫말처럼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를 자연스레 되뇌게 된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9,288㎞, 지구둘레의 약 4분의 1에 버금가는 거리를 열차로 달리는 일은 녹록지않다. 시간 개념도, 공간 개념도 희미해진다. 9년째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일한다는 나타샤 스트라비에르바(48) 차장은 "왕복 15일 간 기차를 타야 하는데 처음처럼 아직도 힘이 든다"고 했다.
하물며 창도 보이지 않는 화물칸에 짐짝처럼 실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30~40일씩 갇혀서 가야 했던 고려인들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두려웠을까. 생리현상도 눌러 참아야 했고, 옆에 있던 가족이 쓰러져 숨을 거둬도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언제인지 모를 정차역이 나타날 때까지 눈물로 지켜봐야만 했던 그들이다. 1937년 스탈린의 탄압정책으로 강제이주 당한 고려인들의 잔혹사다.
그로부터 꼭 75년이 지난 2012년 8월,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이창주 국제한민족재단 상임의장(러시아 국립 상트페테르부르크대 석좌교수)이 말하는 처참한 강제이주의 역사에 '시베리아 횡단 항일 유적지 탐사 대장정' 단원들의 표정은 사뭇 숙연했다. 게다가 소련 인민위원회와 공산당이 고려인에 대한 '인종청소'를 뜻하는 강제이주 결정(결의문 '극동 국경지역 한인 주민 이주에 관하여')을 발표한 시기도 공교롭게 8월이었다.
"강제이주 당한 고려인만 20만명, 그 과정에서 무려 2만 5,000여명이 숨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인들이 일본인의 첩자 노릇을 한다는 혐의를 씌워 스탈린 정부가 '인종청소'를 단행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고려인들은 조선에서 일본으로의 강제 징용, 다시 사할린 탄광으로 징용, 소련의 해체 등을 거치면서 조선, 일본, 소련, 무국적,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러시아, 대한민국 등 많게는 7개의 국적을 가져야 했던 슬픈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세계사에서도 드문 예입니다."
대장정 단원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이소정(17ㆍ경북 후포고 2)양은 "우리가 가는 이 철도가 고려인이 처참하게 강제이주 당했던 길이고 국적을 무려 6번이나 바꿔야 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며 "그 동안 고려인의 역사에 관심조차 없었던 내가 무척 부끄럽다"고 말했다. 소희윤(16ㆍ대전외고 1)양도 "고려인들은 항일 독립투쟁에도 중심 역할을 했다는데, 앞으로 묵념을 할 때에는 그 분들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겠다"고 밝혔다.
중앙아시아에 처참하게 버려졌지만 고려인들은 황무지를 옥토로 만들었다. 그렇게 새 터를 개척해나간 고려인들은 지금 러시아 전역에 약 60만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인들에게 고려인을 뜻하는 '카레이스키'란 말이 낯설지 않은 이유다.
대장정 일행이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만난 러시아인 올가 레바조바(43)씨는 "대학에서 강의를 통해 많은 고려인들이 강제징용 당해왔고 러시아에서 자국의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배웠다"며 "한국과 러시아는 특별한 관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으로 치면 중학생인 알렉산드르(15)군도 "하바로프스크에 고려인들이 많이 살아 친구도 많다"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대장정 단원 중 어머니가 러시아인인 김소현(15ㆍ서울 영등중 3)양은 "엄마에게 고려인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직접 대장정을 통해 유적지를 보고 역사특강도 들어보니 더 마음에 와 닿는다"며 "엄마의 나라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김지은기자 lun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