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곡물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으면서 식량 자급률이 낮은 우리나라에 위기가 닥치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곡물가 폭등에 따른 물가 상승과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일부 곡물의 수급 우려가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부 식료품 가격의 단기적인 상승은 불가피하겠지만, 남ㆍ북반구의 대응 경작 등을 감안할 때 곡물가 폭등이 식량 위기로까지 번질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체적으로 낮은 곡물 자급률에도 불구하고 주식인 쌀의 자급률이 100%가 넘어 체감 위기는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는 분석이다.
16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수입에 주로 의존하는 옥수수와 밀, 콩 등의 가격이 급등함에 따라 내년 초 국내 밀가루 값이 올해 2분기보다 27.5%, 사료값은 8.8%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 곡물가격은 대개 6개월 가량의 시차를 두고 국내 물가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일부 곡물을 제외하곤 2008~2010년 불어 닥친 곡물파동이 재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최근 방한한 호세 그라시아노 다 실바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 사무총장은 국내 언론과 가진 기자회견에서 "옥수수 밀 대두 등의 재고는 낮은 수준이지만,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등지에서 주식으로 먹는 쌀의 재고는 충분하다"며 "이들 국가에서 식량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진단했다.
또 현재 북반구의 수확이 끝나감과 동시에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반구 국가들의 농사가 시작되고 있는데, 곡물 값 상승으로 이 지역 농민들이 곡물 생산량을 늘릴 것이라는 전망도 곡물가격 안정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는 대목이다.
일본계 투자은행(IB) 노무라도 최근 국제 곡물가격의 변동이 우리나라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권영선 노무라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아시아 인플레이션 전망'에서 "한국은 아시아권 국가에서 국제 물가 변동에 가장 영향을 적게 받는 국가"라며 "한국은 소비자물가 상승률 가운데 곡물가 비중이 아시아 평균보다 낮은 데다, 외환보유액도 많아 물가 변동과 같은 외부 충격에 대응할 여력이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당장 국내 식량 위기의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은 아니지만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대비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민연태 농림수산식품부 식량원예정책관은 "해가 갈수록 곡물가격 급등 주기가 짧고 잦아지는 만큼 정부나 관련 기업도 경작 외적인 요인에 대한 대응력이 필요해졌다"며 "그 동안 선물을 통한 곡물 매입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이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가 강조했다. 그는 또 "축산업자들이 고기 등급의 기준인 마블링을 좋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곡물사료 대신 풀사료를 늘리기 위해 고기 등급제 기준을 바꾸는 조치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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