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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장터 외교와 레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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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장터 외교와 레임덕

입력
2012.08.1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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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사 연구의 권위 알브레히트-카리에는 일찍이 외교의 천민(賤民)화를 개탄했다. 고상한 외교적 수사와 막후 협상으로 이뤄지던 전통 외교가 시장 바닥에서 외치는 듯한 거친 말로 여론을 선동하는 양상으로 타락한 것을 일컫는다. 이런 외교 행태를 장터 또는 장바닥 외교(market place diplomacy)라고 부른 이도 있다. 전통적 비밀 외교가 공개 외교로 바뀌면서 정치 지도자들이 힘든 외교 협상보다 즉각 여론의 반향을 낳는 연설, 성명을 선호하면서 두드러진다.

■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라면 당장 무력 충돌로 치달을만한 직설적, 자극적 언사를 서슴지 않는 장터 외교는 대중 정치가 그 바탕이다. 정치 지도자들이 냉정하게 국익을 좇는 분별과 절제를 지키지 않고, 국민의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하고 애국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선동적 언사를 즐겨 쓴다. 그 결과 국가 간 갈등을 실제 국익에 유리한 외교로 풀지 못하고, 대중의 과장된 적개심과 그릇된 자신감을 부추긴다.

■ 세계대전을 비롯한 여러 전쟁도 정치 엘리트와 대중이 왜곡된 의도와 정서로 내몰고 휘둘려 합작한 비극이다. 영토와 국익의 침해 위협을 과장하고, 실제 국가 역량을 넘어선 대중의 분노와 적개심을 동원한 결과는 대개 참담하기 마련이다. 자칫 국익과 국민을 모두 희생하기 십상이다. 어느 시대든 쉽게 유혹되고 휘말리기 쉬운 장바닥 외교를 늘 경계해야 한다.

■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앞뒤로 한중일 3국의 해묵은 영토 분쟁이 갑자기 격화됐다. 러일의 북방도서 분쟁까지 겹친 상황을 '신냉전'으로 규정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겉보기 대결 양상만 보고 무작정 분개하거나 함부로 주먹을 쳐들 일은 아니다. 세 나라 모두 정권의 정통성을 위협하는 비리와 무능으로 레임덕 위기에 몰린 처지를 주목할 만하다. 국내 정치의 실패를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는 대외적 이슈로 가리거나 만회하려는 의도를 냉정하게 헤아려야 한다. 특히 해군력을 비교하는 따위의 섣부른 짓은 삼가는 게 좋다.

강병태 논설고문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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