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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올림픽, 비닐하우스, 쪽방,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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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올림픽, 비닐하우스, 쪽방, 시청

입력
2012.08.16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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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조 양학선 선수가 올림픽 도마 부문에서 금메달을 땄다. 첫 연기 착지에서 두 발짝을 떼는 바람에 두번째이자 결승 최종 연기는 더욱 마음 졸이게 했고 그만큼 더 감동적이었다. 날렵한 몸이 곧추선 채로 공중에서 세 바퀴를 도는데 인체의 오묘함과 아름다움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안전하게 착지했을 때는 환호가 터졌고 메달을 놓친 다른 나라 선수들이 제 일처럼 축하하는 것을 보면서 콧날이 찡했다.

비닐하우스에 사는 그는 이번 올림픽에 입상해서 부모님께 번듯한 집을 마련해드리기가 소원이라 했다. 누리꾼들은 그에게 포상금을 주는 기업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그가 자랄 때 많이 먹었다는 인스턴트면을 만드는 회사에서 그를 광고모델로 기용하지는 않고 인스턴트면 100상자를 보낸 것을 야유했다. 양학선이 좋은 집을 마련할 큰돈을 벌기를 대중이 나서서 응원했다. 결과는 나쁘지 않다. 그가 받기로 된 포상금만 10억원어치에 이른다. 여기에는 아파트도 한 채 들어있다. 전북의 건설업체는 따로 부모님이 사는 곳에 단독주택을 지어주기로 했다. 평생 다달이 연금 100만원도 확보다. 그러나 그가 두번째 연기에서 한발만 삐끗했어도 이뤄지지 않았을 일이 금메달을 땄다는 이유로 쏟아지는 것을 보는 마음은 불편하다. 메달을 따든 따지 않든 그가 흘린 땀방울은 똑같은데 메달을 딴 후에야 누리게 되는 과도한 대접은 바람직한가. 금메달을 따야 비닐하우스를 벗어나는 상황은 정상인가.

서울시는 빠르면 다음달, 늦으면 그 다음달에 신청사로 이사를 한다. 이에 따라 비는 구청사는 무얼 할지 확정되지 않아 결혼식장으로 개방한다, 용도를 시민에게 묻는다 분분하다. 구청사 뿐 아니라 여러 곳에 나뉘어 있는 청사 분원들이 대부분 용도가 확정되지 않았다. 결국 청사용 사무실은 남아 도는데 오세훈 전 시장은 3,000여억원을 들여서 굳이 새 청사를 지은 셈이다. 이 뿐인가. 그는 동대문운동장을 허물고 4,000여억원을 들여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짓게 했다. 도로니 뱃길이니 그가 과시용 업무에 들인 돈은 조 단위다.

돈이 많아서 시민들의 기본적인 권리가 충족되어 있다면 이런 투자는 아까울 것이 없다. 그런데 서울에는 아직도 쪽방촌이 있다. 환기도 난방도 채광도 안 되는, 몸 하나 누이면 꽉 차는 쪽방은 더울 때는 더 덥고 추울 때는 더 춥다. 여기보다는 낫지만 도시가스도 소방차도 들어가지 않는 산동네도 여럿 있다. 서울만 아니라 전국의 대도시 어디에나 같은 문제가 있다.

그런데도 이런 환경은 그대로 두고 꼭 필요하지 않은 거대한 첨단건물을 짓는 데 세금이 낭비될 수 있는 것은 누구나 품위있는 주거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인식이 상식으로 자리잡지 않아서이다. 가난뱅이는 길바닥에 나앉아도 싸다, 보통의 능력자들은 비닐하우스에 살아도 어쩔 수 없다고 믿는 이들이 있으니까 공직자는 세금을 엉뚱한 데에 쓸 수 있다.

금메달을 따지 않아도, 적자투성이의 농사를 짓고 있어도 비닐하우스에 살아서는 안된다. 정규직이 아니어도, 제 밥벌이를 못해도 쪽방에 살아서는 안된다. 환기도 난방도 안되는 공간이 전국의 도시에서 주거지로 존재해서는 안된다.

김주숙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가 77년 스웨덴으로 유학가니 기초생활수급자조차 방 하나에 거실 욕실 부엌은 갖춘 집에 살고 있었다. 햇볕과 바람이 잘 통하고 난방과 온수와 요리용 가스가 보장되었다. 77년 스웨덴의 국민소득은 1만달러였다.

한국은 현재 국민소득이 2만달러다. 그러니 이제는 구성원 모두가 존엄한 인간으로 누려야 할 권리는 당연히 누리는 것에 관심을 갖자. 전국에 비닐하우스 주거와 쪽방이 사라지는 그날에야 과시용 건축물을 지어도 좋다고 하자. 국민의 마지막 한 사람까지 제대로 된 주거지를 갖지 못했는데 22조원으로 강을 파내는 일은 절대로 없게 하자.

서화숙 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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