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되는 가계부채, 자영업자 문제 등의 현안을 놓고 정부와 민간연구기관의 시각 차가 너무 커 국민들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민간은 "심각한 위기 상황"임을 강조하며 선제대응을 요구하는 반면, 정부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며 적극적인 정책대응에 미온적이다. 그러다 보니 주요 정책을 둘러싼 갈등마저 불거지는 모습이다.
15일 재정당국 등에 따르면 최근 가계부채, 자영업자 문제 등과 관련해 상황 인식이 판이한 보고서가 잇따르고 있다. 민간연구기관과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은 1,000조원을 웃도는 국내 가계부채가 부실화할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LG경제연구소는 "그 동안 누적된 가계부채 위험 요인들이 한꺼번에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고, 노무라 등 외국계 IB들은 심각한 가계부채가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를 쏟아냈다.
반면 경제 전문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5일 "소득이 높은 가구에 빚이 몰려 있어 가계부채가 금융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빚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 고소득층 가계의 대출 비중이 높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자영업 진단에서도 시각 차가 확연하다. KDI는 '영세사업자 실태분석'을 통해 "불황일 때는 폐업하는 자영업자 수가 줄어들며 영세할수록 영업이익률이 높다"고 밝혔다. 자영업자들의 진출과 폐업은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지, 규모가 영세해서 돈을 못 벌기 때문에 문을 닫는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재형 KDI 전문위원은 "자영업 전반이 위기에 직면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KDI의 이런 분석은 민간연구소나 보건복지 분야 국책연구소인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ㆍ연구 결과와 크게 배치된다. 보사연은 13일 이발소, 미장원, 세탁소, 목욕탕, 여관 등 골목상권을 형성하는 상당수 자영업자의 연 매출이 2,000만원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현대경제연구원도 자영업자들 간 과당 경쟁 탓에 국내 자영업이 위기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같은 현안을 놓고 시각 차가 이렇게 큰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조사방법의 차이를 들 수 있다. KDI의 영세사업자 실태분석은 통계청이 내는 '전국사업체조사' 등을 기초로 했다. 2000~2009년 업체별 실적 등이 망라된 이 통계에 따르면 자영업자들의 연 평균 소득은 3,000만원에 달한다. 연 매출 2,000만원 미만이라는 보사연 통계와는 엄청난 격차가 있다. 반면 보사연의 연구는 서울 등 10개 도시 1,760개 숙박ㆍ목욕ㆍ미용업소 등을 면접조사 한 결과다. 자영업주들이 설문에 응한 것이어서 사업 실적이 축소 보고됐을 가능성이 크다.
같은 자료를 분석했더라도 의도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 KDI와 LG경제연구소의 가계부채 전망에 쓰인 원 자료는 통계청이 발표한 '2011 가계금융조사'로 동일하다. 하지만 "심각한 위기"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해석이 다르니 대응책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LG경제연구소는 ▦저소득ㆍ저신용자에 대한 서민금융 확대 및 생활비 지원 ▦담보가치 하락 주택을 공적 기관 등이 매입해 원소유자에게 임대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정부 재정의 역할을 강조한 것으로 규제 완화 및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경기부양을 요구하는 재계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기획재정부의 영향권에 있는 KDI는 가계부채 해결책과 관련, "단기 경기부양 목적의 금융규제 완화 등 임의적인 규제 변경은 규제 본연의 목적을 희석시키고 정책의 불확실성을 확대할 우려가 있다"며 성급한 규제 완화 및 자금 지원을 경계했다. 이는 "효과도 없는데 괜히 재정 안정성만 축내는 추경에 반대한다"는 박재완 재정부 장관의 논리적 근거로도 활용되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선 어떠한 일이 있어도 2013년 균형재정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박 장관의 뜻을 KDI가 적극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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