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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대담-경제민주화 대해부] <1>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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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대담-경제민주화 대해부] <1>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입력
2012.08.15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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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벌 경제력 집중 막는 사전 장치" "실효성 없고 투자만 위축"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권과 경제계의 가장 뜨거운 감자는 단연 경제민주화다. "경제정의 실현을 위해 철저한 재벌개혁이 필요하다"는 정치권에 대해 재계는 "재벌개혁이 아니라 포퓰리즘적인 '재벌 때리기'일 뿐"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여야 간에, 또 각 정당 내에 온도 차는 남아 있지만 큰 틀에서 재벌개혁을 향한 정치권의 압박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고, 재계 역시 사활을 걸고 반대논리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경제민주화 논란은 정치권의 '밀어붙이기'와 재계의 '버티기'로 굴절되는 모습이 다분하다. 올바른 경제민주화의 제도화를 위해서도 보다 치열한 토론과 정밀한 검증이 있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한국일보는 논란이 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세부 이슈에 대해 심층 지상토론을 마련했다. 찬성과 반대측 전문가의 의견을 서면 및 전화 인터뷰로 취합, 가상대담으로 꾸며 봤다.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여러 이슈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항목은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의 부활이다. 워낙 시행했던 역사가 깊고 그만큼 굴곡이 많았던 제도라, 논란 또한 가장 뜨겁다. 현재 민주통합당은 출총제 부활을 대선 공약으로 채택할 것이 확실하며, 새누리당은 부활 자체에 대해 부정적 기류가 좀 더 강하다. 부활에 찬성하는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막으려면 사전적 규제 장치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반대하는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장은 "실효성도 없고 투자 위축만 초래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미 2번이나 폐지됐던 게 출총제이다. 꼭 부활시켜야 할까.

김병권: 재벌개혁, 경제민주화가 왜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자.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간 재벌들의 경제력 집중 때문이다. 삼성 현대차 SK 등 우리나라 5대 재벌그룹의 매출액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60%를 넘어섰다. 외환위기 직전인 97년에는 57.8%였는데, 그때보다도 경제력집중이 심화된 상황이다. 특히 2007년에는 GDP 대비 43%에 불과했는데, (출총제가 폐지된)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5대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더 심화됐다.

황인학: 그런 식으로 경제력 집중을 측정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방식이다. 예컨대 30대 그룹의 매출액 합계를 GDP로 나누면 90%, 자산 합계는 GDP의 95%라는 식인데 이건 사실을 과장하기 위한 일종의 '꼼수성' 통계다. 같은 방식으로 다른 나라 집중도를 계산하면 네덜란드는 10대 기업 자산총액이 GDP 120%, 스위스는 98%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 나라에서 경제력 집중이 심하니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나오지 않는다. 30대 그룹 자산 총계를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에서 추정한 총액으로 나누면 집중도는 지난 10년(2000~2010년)간 42.4%에서 40.0%로 줄었다. 출총제 폐지로 경제력 집중이 심화됐으니, 이 제도를 다시 살려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통계방식은 그렇다 쳐도 우리나라에서 경제력 집중의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않는가. 재벌들의 지배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본다.

황인학: 굳이 경제력 집중을 통계적으로 측정하려면 계열사나 영위업종이 아니라 국민 경제 전체에서 해당 기업군의 매출, 자산, 고용이 차지하는 비중을 계산해야 한다. 경제력 집중이 계속 심화하고 있다는 인식과 주장은 예단일 뿐, 통계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김병권: 단순히 매출액 규모만 커진 게 전부는 아니다. '재벌 빵집 논란'에서 드러나듯 재벌들이 손대는 업종이 무차별적으로 광범위해 진 것도 문제다. 지난해 산업연구원 조사를 보면 20대 재벌이 영위하는 평균 업종 수가 2001년 10.6개에서 2011년 17.1개로 대폭 늘어났다. 꼭 필요한 필수업종도 있겠지만 빵집, 커피전문점 등 중소기업과 자영상인들 일터를 빼앗는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빵집 문제는 사실 재벌개혁의 본질은 아니라고 본다. 좀 이상하게 사안이 커진 측면이 있고 오히려 이런 자극적 이슈 때문에 진짜 개혁 논의가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 같다. 어쨌든 출총제를 다시 도입하면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는 효과는 있을까.

황인학: 없다고 단언하다. 경제력 남용을 규율하는 건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위해 당연한 일이지만, 다른 나라에서 하지 않는 출자총액을 규제하려는 것은 별개 문제다. 논거도 잘못됐고 무엇보다 부작용이 심각해질 게 뻔하다.

김병권: '정치권력이 집중되면 독재가 나타나고 시장점유율이 집중되면 독점이 나타난다'는 것은 상식 아닌가. 집중된 경제권력은 선출되지 않은 절대권력이 될 위험성이 있다. 물론 출총제가 만병통치약이란 뜻은 아니다. 하지만 재벌을 제어하거나 견제할 마땅한 세력조차 없는 현실에서 경제력 집중을 완화시키고 재벌의 부실화 위험을 막기 위한 사전적 규제장치는 꼭 필요하다.

-어떤 경우에도 기업은 투자를 하고 諮育?만들어야 한다. 출총제로 인해 경제력 집중이 완화될 지는 몰라도 투자 위축을 초래한다는 지적도 분명히 있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가 어려운데 오히려 출총제가 경기 침체를 부추기지는 않을까.

황인학: 분명 그렇게 될 것이다. 출총제는 경제력 집중 방지에 효과적 수단이 아닐뿐더러 기업의 정상적 경영활동을 옥죄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삼성과 경쟁하는 애플이나 현대차와 경쟁하는 도요타처럼) 외국 기업만 웃게 만들 것이다.

김병권: 공정거래위원회가 마지막으로 출자총액비율을 공시했던 2007년 자료를 보면 당시 출자총액비율 30%를 넘어갔던 금호아시아나, 두산 등은 무리한 인수합병의 영향이 있었다. 이들 재벌은 2008년 금융위기에서 이른바 '승자의 저주' 후유증으로 심각하게 고전했다. 다시 말해 출총제는 무리한 투자에 제동을 거는 것이지, 정상적인 투자를 위축시키지는 않는다고 본다.

황인학: 출자총액을 제한하는 것은 새로운 사업을 할 경우 인수합병(M&A)이나 신설법인을 설립하지 말고 기존 법인의 사업부를 통해 하라는 의미나 마찬가지인데 요즘 같은 글로벌 경쟁시대에 그걸 강요할 수는 없다. 기존 사업부가 할지, M&A나 회사 설립 등 출자를 통해 할지는 기업 스스로 판단할 사안이다. 경영적 판단을 정부가 강제해선 안 되는 것 아닌가.

김병권: 만약 재벌의 투자가 위축된다면 그건 출총제 때문이 아니라 구매력약화로 인한 수요 부족 때문일 것이다.

-워낙 찬반이 치열한 사안이다 보니 합의도출이 쉽지 않아 보인다. 출총제 이외의 대안은 없을까.

김병권: (홍종학 민주통합당 의원이 제시한) '재벌세'가 좋다고 본다. 실제 대공황 시기 미국에서 도입됐던 전례가 있다. 출자 지분에 대한 배당이익에 세금을 물리자는 것인데 이 과세가 실현되면 무분별한 출자동기를 약화시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황인학: 새로운 규제로 경제력 집중을 막겠다는 시도 자체가 옳지 않다. 시장 독과점 폐해와 경쟁제한적 행위를 규율하는 현행 공정거래제도에 역량을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

정리=이성기기자 hangil@hk.co.kr

■ 86년 도입… DJ정부 외환위기 때 없앴다가 부활… MB정부 출범 때 폐지

재벌과 관련된 제도 가운데 출총제 만큼 굴곡이 많았던 것도 없다. 재벌에 대한 정권의 태도에 따라, 또 경제상황에 따라 강화와 완화, 폐지와 부활이 숱하게 반복되어 왔다. 첫 도입 이후 26년 동안 출총제는 살았다가 죽기를 두 번이나 거듭했는데, 이제 세 번째 부활논란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출총제란 기업집단(재벌그룹) 또는 그 계열사가 순자산의 일정 범위 이상을 타 회사에 출자할 수 없도록 하는 것. 재벌의 무분별한 '문어발식 확장'을 막기 위해, '선단식 경영'으로 표현되는 계열사간 출자고리를 끊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출총제는 1986년12월 공정거래법에 처음 도입됐는데 당시에는 ▦총자산 4,000억원 이상 재벌그룹이 대상이었으며 ▦출자할 수 있는 최대 한도를 순자산의 40%로 묶었다. A라는 재벌계열사의 순자산이 1조원이라면, B C D 등 다른 계열사들에 출자할 수 있는 금액이 총 4,000억원을 넘을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한도가 너무 느슨해 규제 실효성이 적다는 지적에 따라, YS정부시절인 1994년12월 3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25% 수준으로 상한선을 낮췄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이 제도는 폐지됐다. 당시는 워낙 경제사정이 어렵던 터라 기업들의 투자활성화가 무엇보다 절실했고, 또 부실한 재벌계열사의 회생을 위해선 우량 계열사들의 출자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DJ정부는 출총제 자체를 없앴다. 그러나 대기업들의 소유집중문제가 다시 불거지자 정부는 1999년 말 순자산의 25%이하로 출자를 제한하는 내용으로 다시 출총제를 되살렸다. 일각에선 "정부가 재벌 군기를 잡으려고 출총제를 다시 도입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외환위기를 벗어나고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출총제 폐지요구는 거세졌다. 재계는 물론 정치권 일각에서도 "전세계 기업들은 투자경쟁을 펴는데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출총제에 묶여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확산됐고, 노무현정부는 2007년4월 ▦적용대상 재벌을 자산규모 6조원이상에서 10조원이상으로 바꾸고 ▦출자한도도 40%로 완화했으며 ▦각종 예외인정도 추가하는 쪽으로 제도를 손질했다. 워낙 대상 재벌이 축소되고 예외가 많아지면서, 출총제는 이미 유명무실한 '누더기제도'가 되고 말았다.

이마저도 이명박정부 출범과 함께 폐지됐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한 이명박정부는 출총제를 재벌을 옥죄는 가장 상징적인 '규제 전봇대'로 규정했던 터였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강하게 반대했지만, 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폐지를 주도했다.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는 출총제 폐지에 따른 보완책으로 같은 해 7월부터 '기업집단 현황 공시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공시일 뿐 출자나 투자를 제한하는 제도는 아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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