댜오위다오보위행동위원회(釣魚島保衛行動委員會)는 1970년대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던 중국과 대만 유학생을 중심으로 출범한 민간단체다. 71년 1월29일 2,000여명의 범중화권 학생들이 뉴욕 유엔본부 앞에서 ‘댜오위다오를 보위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인 것이 계기다.
이후 미국이 72년 일본에 오키나와(沖繩)를 반환하고 일본이 댜오위다오에 등대를 세우는 등 실효지배를 강화하자 범중화권의 움직임도 확대됐다. 69년 댜오위다오 부근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등이 대규모로 매장돼 있는 사실이 밝혀진 것도 이런 추세에 기름을 부었다. 이후 중국에선 자발적인 댜오위다오 관련 모임들이 우후죽순처럼 결성됐다. 결국 2003년 12월 단체 30여개의 대표가 모여 ‘중국 민간 댜오위다오보위연합회’를 구성했다. 2004년 3월24일 펑진화(馮錦華) 등 중국인 7명이 댜오위다오에 상륙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신중국 성립 이후 댜오위다오에 오른 첫 중국인이다.
2008년 6월과 2010년 9월에는 대만과 홍콩, 마카오의 활동가가 ‘취안자푸(全家福)호’와 ‘간언(感恩)99호’ 등을 타고 댜오위다오 부근까지 가 일본 순시선과 대치하기도 했다. 이번에 댜오위다오에 상륙한 홍콩의 댜오위다오보위행동위원회도 지난달 4일 취안자푸호를 타고 댜오위다오 해역까지 가 시위를 벌였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