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중국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ㆍ釣魚島)는 5개 섬과 3개의 암초로 이뤄져 있다. 전체 면적은 6.3km²에 불과하다. 일본 오키나와(沖繩)에서는 남서쪽 410㎞ 떨어져 있고, 대만에서는 북동쪽으로 170㎞ 거리에 있다.
센카쿠를 실효지배하는 일본은 센카쿠를 1884년 오키나와 주민 코다 다쓰시로(古賀辰四郞)가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1895년 센카쿠를 정식으로 오키나와현에 편입시켰다. 센카쿠는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하면서 오키나와와 함께 미군의 관할로 넘어갔다. 이후 일본은 1972년 미국이 오키나와를 반환하면서 센카쿠 역시 다시 일본 영토로 편입됐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중국은 명나라 시대부터 각종 문헌에 댜오위다오라는 명칭이 등장하는 등 중국의 영토라는 역사적 근거가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센카쿠가 일본에 넘어간 것은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한 후 대만의 부속도서로 할양되면서부터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2차 대전 후 일본과 미국의 센카쿠 관할권 이양은 중국의 고유 영토에 대한 밀실거래라는 것이다.
일본과 중국이 센카쿠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배타적경제수역(EEZ)의 기점으로 경제ㆍ전략적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특히 막대한 양의 지하자원이 매장돼 있다는 것으로 추정되면서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일본은 2002년 센카쿠 주변 해역에 석유 1,095억 배럴과 일본이 100년간 쓸 수 있는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과 중국의 분쟁이 본격화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은 1978년 중일조약을 체결하면서 “다음 세대가 우리보다 더 좋은 해결방법을 찾아낼 것”이라며 센카쿠 문제를 덮어뒀다. 이후 중국은 경제ㆍ군사적 영향력이 성장하면서 영유권 주장 목소리를 높여왔다. 중국은 1992년 센카쿠를 자국의 영토로 편입하는 영해법을 발표했고 1995년에는 해역탐사도 진행했다. 2010년 9월에는 일본이 센카쿠 인근 해역에서 일본 순시선을 들이받은 중국 어선을 나포하면서 갈등이 고조됐다. 당시 중국은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며 일본을 압박했고 결국 일본은 선장을 석방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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