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조선족 자치주인 옌지와 북·중 접경지역을 둘러봤다. 옌지는 조선족 자치주 지정 60돌을 기념하는 행사를 앞두고 대대적인 환경정비 사업이 진행 중이었다. 중국 동북지역 개발의 성장축인 '창지투(창춘-지린-투먼) 선도구 개발지역'의 역동성은 매우 강했고 북한을 뚫고 들어갈 기세를 보였다.
북·중 접경지역의 중국 측 교역 중심지 곳곳에는 규모가 큰 세관들이 들어서서 북·중교역이 활성화되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기존에 있던 도문 세관에는 중국관광들이 몰려왔고, 나선시로 들어가는 훈춘지역 권하 세관에는 북으로 들어가는 보따리 상인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사타자 세관은 새롭게 건설 중이었다. 연길지역에만 7개의 중국 세관이 있는 것을 보면 북·중 접경무역이 그만큼 활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변대의 한 교수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북·중 비공식무역이 공식무역의 10배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만강 유역은 중국, 북한, 러시아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성장잠재력이 큰 지역으로 1990년대 유엔개발계획(UNDP) 주도로 두만강 개발계획이 추진되던 지역이다. 이 계획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3개국과 한국, 일본, 몽골 등이 함께 참여하는 다자간 개발협력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국가들 사이의 경제협력은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G2로 성장한 중국이 주도하는 두만강유역개발이 중국과 북한, 중국과 러시아, 북한과 러시아 등 양자 협력구도로 새로운 활력을 찾고 있다. 그 중심이 훈춘으로 보였다. 두만강유역 '황금의 삼각주' 중국 거점인 훈춘에는 중국, 러시아, 북한 사람들이 모여 활발히 교류하는 국제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중국을 방문 중인 장성택 당 행정부장 겸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나선, 황금평 개발협력과 관련한 진전된 합의를 하고 창춘을 방문하고 있다. 장성택이 창지투 개발현장을 둘러보는 것은 북한 경제재건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진-선봉지역은 황금의 삼각주 북한 거점으로 중국 동북3성 물류가 태평양으로 나가는 출로다. 나선시가 갖는 지정학적 중요성을 감안하면, 중국이 나선지구개발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황금평·위화도지역은 사정이 다르다. 홍수가 나면 수몰되는 퇴적지라 건설비용이 많이 들어가 선뜻 나서는 투자자가 없다. 북한은 나선지구에서 중국이 얻을 이익을 감안해서 황금평에 중국 측이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초기 투자를 해야 한다고 때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중국지방정부 차원에서는 중앙의 지시에 따라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어쩔 수 없이 움직이지만 소극적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번 합의로 시간은 걸리겠지만 황금평·위화도는 지식 집약형 신흥 경제지구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러시아 가스전을 한반도로 연결한다면 황금의 삼각주 개발은 보다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권이 붕괴되고 자본주의 세계체제로 일체화돼가는 지구화시대, 북한의 자본주의 편입은 시간의 문제다. 1990년대 초 북·일국교정상화 교섭, 94년 북·미제네바합의, 2000년 남북정상회담, 최근 북중경협 확대 등의 역사적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의 자본주의 편입의 경로는 도쿄→워싱턴→ 서울→ 베이징으로 옮겨지는 듯하다.
북한이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불가침 합의를 이룬 다음 일본과 가장 먼저 접촉을 시작한 것은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금과 보상금을 받아 경제재건의 종자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우두머리인 미국의 체제보장 없이는 경제재건이 어렵다고 보고 핵문제를 매개로 북·미협상을 시작했다. 북·미적대관계 해소의 속도가 나지 않자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서울을 경유해서 워싱턴, 도쿄로 가고자 했지만 핵문제를 둘러싼 한·미·일과의 갈등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국제사회가 유엔제재로 봉쇄하고, 남측이 5·24조치로 교류협력을 제한하자 북한은 주체·자주노선에는 맞지 않지만 베이징으로 갈수밖에 없어 보인다. 결국 북한의 자본주의 세계 체제로의 편입은 중국을 통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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