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이른바 '경제 민주화' 논의가 폭주 기관차 같다. 연말 대선을 앞둔 논의의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도가 지나치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의 논의는 이제 민주당과 구별하기도 어렵다. 모임은 그 동안 경제정의 관념과 닿는 일련의 법제 개정을 논의해왔다. 대기업 총수의 배임ㆍ횡령 범죄에 대해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법정형을 끌어올리자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 개정안, 대기업이 계열기업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등 불공정 거래행위를 저질러 사익을 편취할 경우 계열기업을 강제 매각하도록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이다.
특경법 개정안은 위헌 논란을 부르기도 했지만, 해당 배임ㆍ횡령죄의 구성요건을 조금만 엄격하게 다듬어도 대기업의 진짜 걱정거리는 덜 수 있다는 점에서 다수 국민의 법 감정에 부합할 수 있었다. 배임ㆍ횡령죄가 '귀에 걸면 귀고리'식으로 적용되지 않는다면, 실제 관건은 대기업 총수의 준법 여부가 된다. 일감 몰아주기 등 불공정 거래행위에 대한 실질적 제재도 새삼스럽지 않다.
이런 논의에 대한 여론의 공감이 민주당과 맞겨룰 만하다는 자신감을 여당에 준 모양이다. '순환출자 금지' 논의에서 기존 당론보다 한 발 앞서 나가는 듯하더니, '금산분리'에 이르러서는 민주당 좌파와도 비슷해졌다. 야당은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존의 순환출자에 대해 일정 유예기간 이후의 전면적 해소를 주장해 왔다. 여당은 애초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 구상에,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의결권 제한을 덧붙였다. 순환출자의 기본 목적에 비추어 말만 다를 뿐 실제로는 기존 순환출자를 서둘러 해소하라는 야당 주장과 같다.
순환출자의 전면적 해소에는 엄청난 자금이 필요하고, 대기업 총수 일가조차 단기간에 이를 마련할 길이 없다. 이 때문에 법제로써 경영권을 박탈하려는 것과 다를 바 없고, '경제 민주화'라는 말과는 정반대로 '의회 독재'에 이르게 된다.
현재의 순환출자, 또는 연쇄출자가 재벌 총수의 '과잉 권력'의 바탕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분에 비례한 의사결정권'이라는 최소 기준에도 어긋나는 재벌 총수의 '불공정 지배'가 정말 순환출자에 따른 '가공 지분' 때문일까. 가령 삼성전자의 경우 이건희 회장과 가족, 계열사 등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쳐도 의결권 있는 주식의 17.6%에 불과하다. 삼성물산은 14.2%가 고작이다. 이 정도로는 지배는커녕 주주총회 의사정족수(25%)도 채울 수 없다.
예탁결제기관의 대리권이 의제되고, 정족수를 채우는 범위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되 실제 주총 참석 지분의 찬반 비율대로 투표한 것으로 치는 '가공 의결권(Shadow Voting)'제도를 마련해 준 게 국회였다. 결자해지의 정신으로 여야가 그 폐지에 나서고, 그 대신 소액주주의 주총 참여를 촉진할 전자투표 제도의 의무화 등을 서둘러야 한다.
모임의 '금산분리' 논의는 현재 9%인 산업자본의 은행소유지분 한도를 2009년 이전의 4%로 환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분 제한 대상을 증권ㆍ보험사 등 비은행 금융지주회사로 확대하자는 데까지 나아갔다. 대규모 기업집단 가운데 은행 지분을 4% 이상 보유한 곳이 없어 소유지분 문제보다는 대상 범위 확대가 더 큰 논란이 되고 있다.
국내 주요 대기업집단 대부분이 비은행 금융계열사를 가진 상황에서 이들 금융계열사 보유지분에 의결권 제한이 적용될 경우 대기업은 증권ㆍ보험사에서 손을 떼야 한다. 그 지분을 인수할 국내 자본을 찾기 어려운 현실에서 외국 자본에 넘길 수밖에 없다. 이는 2009년 18대 국회가 '금산분리'완화에 나섰을 당시의 핵심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대중의 시샘 본능을 자극해 재벌 총수의 손에서 알짜배기 기업을 강제로 빼앗겠다는 '혁명'을 하자는 게 아니라면 실효성은 떨어지고 선동성만 강한 현재의 논의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대선을 앞둔 모처럼의 기회에 실천적 개혁 방안을 천착하길 권한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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