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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진안, 사람사는 내음이 정겨운… 시간의 모퉁이 돌아 향수에 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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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진안, 사람사는 내음이 정겨운… 시간의 모퉁이 돌아 향수에 젖다

입력
2012.08.15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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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래 전은 아니다. 대학교 들어가고 얼마 안 된 봄날. 학교 앞 2,500원짜리 백반집에서 TV를 보며 숟가락질을 하는데 동기 녀석 한 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TV에선 무슨 특집 프로그램인지 옛날 '개구쟁이 스머프'의 한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눈이 동그래져 밥알 가득한 입을 한참 벌리고 있던 녀석 왈 "스, 스머프가 파란색이었어?" LCD TV가 팔리기 시작할 무렵이니 컬러 TV가 나오고도 십오 년쯤 지난 때였다. 궁금했다. '개구쟁이 스머프'를 흑백으로 보고 자란 이 녀석은 대체 어떤 곳에서 왔을까. "거시기 우리 동네가 쬐까니 그래…." 첩첩산중이라는 낱말을 접할 때면 지금도 녀석의 말투가 떠오른다. 그 녀석 고향이 전북 진안이었다.

"좋게 생겼구먼. 근데, 여태 장가를 못 갔댜? 저얼대 똑똑한 녀자 바라지 마. 수수허니 그러믄 된 거여. 아고오, 무서. 똑똑한 년들, 툭하믄 통장 내놓으라고 지랄해쌓고. 글쎄, 이 잡아먹을 년들이…"

진안읍에서 백운면 가는 길에 히치하이킹으로 조수석에 올라탄 서말순(88) 할머니의 입이 걸어서 운전이 즐거웠다. 정송마을 사시는 할머니는 읍내에 마실 나왔다 돌아가시는 길이었다. 다섯 아들 낳아 길러내고 장가보내고 며느리들한테 들볶인 얘기는 시집 오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는데, 옹기 구워 팔던 친정집에 먹을 게 부족해 남의 집 부엌방을 전전하며 살았던 그이의 처?퓽?세월이 짠했다. 비 긋는 정송마을 뒷산에 면(面)의 이름(백운)처럼 허연 구름이 널려 있었다. 기껏 20분 남짓 차 태워줬다고 잘 살라고 축수해주시는 할머니의 정성이 송구스러웠다.

진안은 해발 300m 넘는 고원이라 외지에서 진안 땅에 들라치면 자동차 가속 페달을 솔찬히 밟아줘야 한다. 배곯던 시절의 "징상시러운(징그러운)" 이야기야 이 나라 어딜 가나 비슷하지만 진안은 그 세월의 결이 아직 다른 곳보다 오롯하다. 부쳐먹을 땅뙈기가 적고 물산이 부족해 옛날 나랏님들도 진안의 공물은 그다지 챙기지 않았다고 전한다. 난리가 나면 오히려 인구가 늘었다고 하니 숨어 살기에 적당했던 모양. 역사적으로 내세울 건 별로 없다. 군(郡)을 다 털어도 국보 한 점 안 나온다. 대신 고달팠지만 정겨운 우리네 사는 얘기가, 어느 동네엘 가나 서리서리 열두 타래요, 오달지기는 또 백중날 쪄먹는 찰강냉이 맛이다.

그래서 진안 여행은 관광안내지도에 이름이 굵은 붉은 글씨로 박힌 곳보다 간신히 동리 이름만 적혀 있는 마을을 찾아갈 때 더 재미진다. 읍내에서 '무진장 버스'라고 적힌 무주 진안 장수 도는 시골 버스를 타고 아무데나 내키는 곳에 내려도 되고, 덕태산(1,113.2m)과 내동산(887m) 자락 돌아 섬진강 따라 이어지는 '진안고원 마실길' 따라 터벅터벅 걸어도 된다. 지도를 펴 놓고 순전히 마을의 이름이 고운 곳을 골랐다. 백운면 노촌리. 거기 포함된 자연부락 가운데 '밤나무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이 있었다. 다음은 밤나무정이 김평연(81) 전갑순(73)씨 부부의 러브 스토리다.

1957년. 아랫마을 하미치의 김씨는 군에서 막 제대한 스물여섯 살이었다. 산판 작업과 숯 구워 파는 일을 하던 그의 눈에 밤나무정이에 새로 들어선 함바집 딸 전씨가 들어왔다. 당시엔 사흘에 돼지 한 마리 잡아야 할 만큼 일꾼이 많아서, 열여덟 살 꽃다운 나이의 전씨도 쉴 새 없이 부모를 거들어야 했다. 일대의 총각치고 전씨를 흘깃거리지 않는 이가 없었는데, 전씨 아버지는 일찌감치 게으름 피우지 않는 김씨를 점찍어 뒀다. 김씨 어머니도 가끔 재봉틀을 빌려 쓰러 집에 오는 전씨의 바느질 솜씨를 눈여겨봐뒀다. 눈치 빠른 중신어미 몇 차례 두 동네를 오가고, 이듬해 2월 두 사람은 화촉을 밝혔단다.

마을 사잇길은 이제 인적 드문 호젓한 산길로 변해 있었다. 전씨가 가마 타고 시집 왔을 길엔 저수지가 새로 생겼고, 숯 굽던 터는 고추밭과 인삼밭으로 바뀌어 농사 짓는 사람들의 손이 분주했다. 콘크리트로 새로 지은 집들 사이로 떨어져 나간 흙벽의 옛집이 남아있다. 아직 사람이 살고 있는 집도 꽤 됐다. 어느 집이고 문을 두드리면, 김씨와 전씨 부부 같은 이들이 고들빼기 김치에 탁배기 사발이라도 앞에 두고 이야기 보따리를 끌러놓을 것 같았다. 하미치마을 지나 '배고개'와 '닥실고개' 넘으면 나오는 마을 이름은 '은안'이다. 발 닿는 곳마다 이처럼 이름이 고운 고장을 다른 데서도 찾을 수 있을까 싶었다.

진안엔 마을 이름에 '원(元)'자가 붙은 곳이 여럿 있다. 몇 개의 자연부락을 현재 법정동명으로 묶으면서 본래 그 이름으로 불렀던 마을에다 원자를 달았다. 예스러운 마을을 찾아가고 싶으면 이런 마을로 가면 된다. 원덕현마을도 그런 마을 중 하나. 진안 땅 끝자락이라 주민 중엔 외지에서 시집온 사람이 많다. 진안 땅이 워낙 외져서 친정은 서럽도록 멀고 멀었다. 임섭례씨는 순창군 임계에서 금당재를 넘어 왔고, 임실군 성수 출신인 김산옥씨는 열여섯에 염북재와 구신치를 넘어왔단다. 시집 오는 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가마꾼들이 힘들까봐 내려서 걸었다는 그이들은 이제 팔십을 훌쩍 넘긴 할머니가 됐다.

진안은 화려함과 거리가 먼 땅이다. 하지만 하늘과 맞닿은 고원 "굼턱굼턱(구석구석)"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깃들어 왔고, 그들의 질박함이 고여 이름도 생김새도 고운 수백 개의 자연 마을이 되었다. 최근 귀농인구가 늘면서 하나 둘 비어가던 마을에 어린아이 웃는 소리가 들리고 있단다. 반가운 소식이다. 사람 사는 들큼한 냄새가 그립다면 진안으로 찾아가볼 일이다. 거기 눌러앉고 싶어질 지도 모를 일이지만.

진안=글ㆍ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도움말 정병귀 진안고원길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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