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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길 위의 이야기] 파주 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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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길 위의 이야기] 파주 살러 간다

입력
2012.08.1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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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8년 동안 여섯 번이나 이사를 하게 되면서 저축할 새도 없이 이사 비용으로 꽤 많은 돈을 거리에 뿌려야 했지만 그 대가로 얻은 성과라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 노래의 가사가 점점 이해되는 요즘, 노트에 적힌 메모들을 따라 나를 유추하다보니 서울 한복판에서 나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었겠구나, 운명처럼 어떤 안도를 하게 되더란 말이다.

산책을 좋아하나 길을 나서는 순간 쇼핑하기 좋은 몸으로 바뀌던 나, 꽃과 나무를 좋아하나 베란다에 빽빽이 화분들을 채우고 돌아서면 죽은 놈들 갖다 버리기 바빴던 나, 무엇보다 이 차, 저 차 다양한 차들의 홍수 속에서 휴대폰 액정이나 들여다볼 뿐 논과 밭의 변모하는 사계절의 이 색 저 색 앞에 매번 감탄하고 싶었던 나, 그래서 파주로 가게 되었나보다.

서울에서 벗어나는 즉시 서울로 다신 입성할 수 없다고 겁을 주는 선배들도 있었다지만, 내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강남 토박이를 자처하며 아주 오래된 아파트를 특권처럼 내세우며 사는 이들이다. 나 같으면 그렇게 좁고 그렇게 낡은 집을 그렇게 비싼 돈 줘가면서까지 살지 않을 텐데 뭐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 다르니까, 하여 나는 치커리랑 상추 모종이나 사러 갈 참이다. 집 앞 텃밭에 쑥쑥 키워 북북 뜯어 먹으려고. 변비는 내가 싫어하는 것 가운데 일등이거든.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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