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14일 "(일왕이)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하는데 독립운동을 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찾아가서 진심으로 사과할 것이라면 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충북 청원군 한국교원대에서 열린 '학교 폭력 근절을 위한 책임교사 워크숍'에 참석해 이같이 말하고 " '통석의 념' 뭐 이런 단어 하나 찾아서 올 것이면 올 필요 없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언급은 행사 도중 한 교사가 '독도 방문에 대해 얘기해 달라'고 질의한 데 대해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애석하고 안타깝다'는 뜻의 통석(痛惜)의 념(念)은 1990년 5월 일본 아키히토 일왕이 일본을 방문한 당시 노태우 대통령을 환영하는 만찬 자리에서 한일 과거사와 관련해 사과의 뜻을 표현한 말이지만 통상적으로는 쓰이지 않는 것이어서 진정성이 있느냐는 논란이 제기됐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독도 방문은) 2,3년 전부터 생각한 것이고 즉흥적으로 한 게 아니다"면서 "이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데 하는 점을 검토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내가 모든 나라에 국빈 방문을 했지만 일본은 안 가고 있다. 일본 국회에서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얘기를 하게 하면 (방문)하겠다"면서 일본을 국빈 방문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이와 함께 초등학교 시절 주먹을 쓰며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를 40, 50년 후 만난 일화를 얘기하며 "(그 친구에게) 가해자는 잊을 수 있지만 피해자는 잊지 않고 단지 용서할 뿐이라고 했다"며 "일본의 가해 행위는 용서할 수 있으나 잊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이러한 대일본 인식은 8·15 광복절 경축사에도 반영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대신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에 대해 이전과는 다르게 강한 어조로 언급할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련의 언급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다"며 "이번 경축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훼손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일본이 과거사라는 '역사의 사슬'에 묶여 양국의 발전적 미래를 지향하지 못하는 점을 지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그 동안 8·15 경축사에서 과거사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의 발언이 알려지자 일본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정부 차원의 공식 대응이 즉각 나오지는 않았지만, 자국 내에서 비판이 금기시되어 온 일왕의 사과를 요구한 발언에 비난이 터져 나왔다.
마이니치(每日) 신문에 따르면 익명의 일본 외교당국자는 이 대통령을 발언을 "믿을 수 없는 발언"이라 평가하며 "그 악영향이 수년에 걸쳐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 2월에 출범하는 한국 차기 정부에서도 양국 관계의 회복은 간단치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정부 당국자는 일본 정부가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상응하는 조치를 검토하는 상황에서 이번 발언으로 인해 일본 내의 정서적 반발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일본 외무상은 "(이 대통령 발언) 보도는 알고 있지만, 그런 얘기를 (한국 측으로부터) 전해 듣지는 못했다"며 유보적인 발언을 했다.
도쿄=한창만 특파원 cmhan@hk.co.kr
김동국기자 d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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