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게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종로구 도시공간예술위원장인 건축가 승효상씨는 14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신축현장 화재 참사가 발생하자 이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승효상씨는 1년4개월 전인 지난해 4월21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신축 문제를 다루기 위해 열린 종로구의 건축교통통합심의위원회에서 서울관 건립의 촉박한 공사기간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던 인사다. 그는 "공기 문제는 우리 위원회에서 다룰 사안이 아니었지만 '적정한 공기를 확보할 것'이란 조건을 달고 통과시켰다"고 말했다. 국립미술관의 위상과 중요도에 비춰 지난해 6월28일 착공해서 내년 2월 완공한다는 '20개월 공기'가 위험해 보였다는 얘기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공사기간에 대한 우려는 상당수 건축가들이 진작부터 제기해 왔다. 황두진건축사무소 대표 황두진씨는 "객관적인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지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전체 공사일정이 굉장히 무리하게 짜여있다는 얘기는 이미 건축계에 파다했다"며 "투입 장비 등에 따라 절대적인 시간은 단축될 수 있으나 비슷한 규모의 다른 공사와 비교해도 짧다"고 말했다.
김병욱 기용건축 소장도 "연면적 3만㎡ 의 미술관을 착공 후 20개월(순수 건축공사로는 13.5개월) 만에 완공하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국가의 상징건물인 국립미술관의 공기는 어느 국가나 넉넉하게 잡는 게 일반적"이라며 "인원을 얼마나 투입하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이 정도 공사기간은 현장을 닦달해가며 공사를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성룡 성균관대 석좌교수는 "선진국 미술관의 경우 기획ㆍ개발에만 5년 정도 걸린다"며 "기존 건물 철거 후부터 20개월이라는 서울관의 공사기간은 극한적인 스케줄"이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설계자인 민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의 공사현장 출입이 차단됐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소재 한 사립대 건축학과 교수는 "올해 초 민 교수가 공사현장에 들어가려고 했더니 시공사에서 막았고, 그 사진이 페이스북에 올라 건축계 내부에서 공분을 산 적이 있다"며 "민 교수가 워낙 디자인이 바뀐 것에 강력하게 항의하니까 시공사에서 차단하려고 그런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후 시공사인 GS건설 측은 민 교수가 하루이틀 전에 연락을 하면 입장을 허가해주는 식으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건축 설계자가 공사현장에 갈 때 시공사 측이 막는 경우는 없다는 게 이 교수의 말이다. 공기 때문에 설계자와 시공사 간에 유기적 협조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될 만한 부분이다.
건축전문가들은 또 수백년을 내다보고 지어야 할 국립미술관에 예산과 시공 편의 때문에 인화성 물질인 우레탄, 스티로폼 같은 유기 단열재를 사용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세진 우송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유기 단열재는 불에 타기 쉬울 뿐만 아니라 엄청난 유독가스를 발생시킨다"며 "불연성 단열재나 불에 강한 무기 단열재가 개발돼 있는데 국립미술관 공사에 유기단열재를 사용하게 된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평가되는 무기 단열재의 경우 유기 단열재에 비해 가격이 1.5배 가량 비싼데다 벽면이나 기둥, 천정 등에 시공하기가 까다롭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국내 건설 현장에서는 유기 단열재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인선기자 Kelly@hk.co.kr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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