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하고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으로 촉발된 학교폭력 대책의 일환으로 올해부터 학교폭력의 학생부 기재를 시행하고 있지만, 일부 진보교육감은 이를 유보하고 있다. 인권침해와 낙인 우려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의 제도개선 권고가 논란을 가열시켰다. 인권위는 학교폭력 가해사실의 학생부 기재가 학생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졸업 전에 삭제하도록 교과부에 권고했다. 교과부는 "학교 폭력엔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다"며 이를 거부했지만, 진보교육감들은 기다렸다는듯이 일선 학교에 '기재 보류'를 지시했다. 이에 교과부는 기재 거부 교사들을 징계하고, 해당 학교 실태조사를 하겠다고 나서면서 갈등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일선 학교는 혼란에 휩싸였다. 구교정 인천 영종중 교사는 "사람의 생명보다 인권이 우선할 수 없다"며 "솜방망이 처벌이 사태를 키운 측면이 있는 만큼 일벌백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내용을 학생부에 반드시 기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정환 경남 통영 충무중 교사는 반대했다. 박 교사는 "학교 생활지도의 제1원칙은 처벌이 아닌 예방"이라며 "예방책을 가장한 처벌인 동시에 보복이기도 한 학생부 기재는 당장 철회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 반대
"청소년기 한번 실수에 '주홍글씨' 가혹…장기 기록 보관도 인권침해 소지 다분"
얼마 전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학교에서 무수히 많은 문제를 일으키다 지난해 가까스로 졸업한 A군이었다. 특별한 용무가 있었던 건 아니었고 "방학을 했다"며 건 단순한 안부 전화였다. 반가운 마음에 "자장면이나 한 그릇하자"고 했고, A군은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학교로 달려왔다. "학교 다닐 때 제가 왜 그렇게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힘들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라는 이야기로 시작된 A군의 이야기가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더 이상 '사고'를 치지 않고 있으며, 학교 생활은 물론 매사에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이어질 땐 새삼 보람도 느꼈다.
A군 같은 질풍노도의 청소년들은 늘 변하기 마련이다. 성장 과정에서 겪는 신체적 심리적 변화와 이로 인한 주변환경과의 부조화로 감정이 폭발하는 경우에는 다양한 행동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유형이 청소년 비행과 학교폭력이다. 지난해 말 대구에서 일어난 중학생 투신 자살 사건의 발단이 바로 학교폭력이었다. 충격에 빠진 교육 당국은 다양한 대책들을 쏟아냈는데, 그 중 하나가'학교폭력 가해사실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며 졸업 전에 가해사실을 삭제하도록 제도개선을 권고해 논란이 되고 있는데, 나는 이 참에 아예 거두어 들이는 게 옳다고 본다.
학교폭력의 해악성과 폐해를 몰라서가 아니다. 학교폭력을 뿌리 뽑기 위한 일련의 노력들이 충분한 논의와 면밀한 검토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일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적용하는 데에는 많은 무리와 안타까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인권위도 지적했던 것처럼 폭력 관련 징계사항을 학생부에 기재하고 수년 간 보관한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 취지를 생각한다면 이해를 못 할 것도 없지만 비교육적이다. 현재 일반적인 학생범죄행위와 교칙위반 시 받게 되는 징계위원회(선도위원회)의 처분은 생활기록부에 기록하지 않는다. 공표하지도 않는다. 인권 침해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학생을 선도하고 교육적으로 조치해서 기회를 줘야 할 학교가, 희망을 이야기해야 할 교사가, 그 사실을 기록하고 보관까지 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또 학교폭력과 관련된 것들이라면 아주 작은 것들까지도 기록하도록 하고 있는 만큼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학교폭력의 책임 소재를 가리자면 해당 학생이 그 길로 빠지는 것을 막지 못한, 어쩌면 그 길로 이끈 우리사회의 어른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을 것이다.
학교폭력 가해사실의 생활기록부 기재를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개선된 사항까지 기록함으로써 개선 노력에 대한 재평가의 기회를 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실효를 거두기는 어렵다. 해가 바뀌면 학교나 학년이 바뀌면서 생활기록부 기록을 맡은 담임도 달라진다. 연속적으로 지켜보지 않은 교사라면 형식적인 기록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기록은 무의미하고 생활기록부는 어른들의 손을 스쳐 지나가는 한 장의 서류에 불과하다.
낙인효과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A군을 문제아로 낙인 찍어 졸업시켰더라면 그날 전화가 오지도, 학교로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청소년들은 누구나 A군처럼 변할 수 있다. 교사는 따끔하게 이야기 하되 믿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어른들의 세계에서마저도 낙인효과를 우려하는데, 올바른 파단을 하기 힘든 청소년기의 실수 한번으로 그들의 미래까지 봉쇄하는 것은 갱 영화의 보복 장면과 무엇이 다른가. 폭력의 특징 중의 하나가 보복이고, 보복의 특징은 악순환 한다는 것이다.
학교폭력 가해사실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해 '주홍글씨'를 다는 것은 재발방지책을 빙자한 처벌이다. 처벌보다 중요한 것이 예방이다. 학교 생활지도의 제1원칙은 처벌이 아니라 예방이라는 것을 세뇌 받다시피 한 교사들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를 잊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박정환 경남 통영 충무중 교사
■ 찬성
"징계기록 남기자 학교폭력 크게 감소…솜방망이 처벌 실효성 한계는 이미 입증"
어느 때고 학교폭력이 문제가 되지 않았던 적이 있었느냐 만은 요즘 학교폭력은 과거와 다르다. 일부 학생들에 의해 가해지는 육체적, 정신적 폭력이 그 대상 학생들을 죽음으로까지 내몰고 있고 이 같은 폭력 행위가 단순한 비행 수준을 넘어 지역적 연계까지 이뤄 행해지는 경우도 있다.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인식한 교육과학기술부가 여러 대책을 내놓았고, 경찰 등 각 기관의 노력으로 이제 학교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는 분위기다. 3월부터 학교폭력 가해사실을 해당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함으로써 '학교폭력은 범죄'라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됐고, 학교폭력 건수를 줄이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가해 학생'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졸업 전에 해당 기록을 삭제 권고한 것은 유감스럽다. 아예 이 제도를 시행하지 말라는 이야기와도 같기 때문이다.
학교폭력 가해사실 학생부 기록의 목적은 학교폭력을 줄이는 데 있다.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가해사실의 학생부 기록은 계속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그 동안 학교폭력이 기승을 부린 데에는 가해 학생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탓이 컸다. 하지만 이 제도 시행으로 학부모들도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고, 학생부에 징계 기록이 남는 걸 피하기 위해서라도 학교폭력을 자제하는 학생들이 늘었다.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은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같은 정신적 질병에 시달리고, 심각한 경우에는 자살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가해 학생에게 취해진 조치는 사회봉사와 특별교육이 대부분이었다. 인권위의 권고에 따라 일부 지역 교육감들이 학생부에 학교폭력 가해사실 기재를 보류시킨 것은 절대 다수인 선량한 학생들의 인권에는 눈 감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가해사실 기재 보류는 이제 조금씩 효과를 내고 있는 학교폭력 대책의 약화를 부를 것이고, 학교폭력의 잠재적인 피해 학생의 인권은 오히려 위축시킨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는 곤두박질 치고 있는 교권을 지키기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다. 체벌을 금지한 이후 교칙을 어기거나 교사의 정당한 지도에 따르지 않는 학생들이 증가하면서 교권은 날로 떨어지고 있다. 소수의 문제 학생이 선량한 다수의 학생에게 피해를 줘도 교사가 이를 제지하기 어렵다는 것이 일선 교사들의 한결 같은 하소연이다. 이렇게 되면 학교는 더 이상 학교가 아니다. 교사가 학생을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이 어느 정도 보장이 될 때 교육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는 배우는 학생들의 준법의식 함양에도 도움이 된다. 최근 학교폭력의 특징 중 하나는 최초 폭행 연령이 낮아지고, 가해자와 피해자 구별이 불분명해 피해와 가해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청소년기의 충동, 호기심에 의한 학교폭력을 소개하고, 법적인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의 교육으로 학교폭력을 줄이고 자율적인 준법 풍토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학생부는 학생의 학업 성적뿐만 아니라 해당 학생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성장하는 과정의 기록이라는 존재 이유를 한번 더 되새길 필요가 있다. 당장엔 쓰더라도 가해자의 자발적인 교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학교폭력을 줄이기 위해서는 가해사실의 학생부 기재 외에도 근본적인 학교폭력 해결을 위한 노력도 함께 경주되어야 한다. 인성교육의 중요성은 항상 강조되고 있지만 학벌중시 문화와 입시위주 교육에 밀려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폭력, 왕따, 약물중독 같은 일탈이 대부분 인성교육 부족에 기인한다. 학교폭력의 학생부 기재도 기재지만 제대로 된 인성교육이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모든 교육과정이'통합적인 인성교육'으로 활용될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구교정 인천영종중교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