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신축 현장 화재 참사는 공사 중 문화 유적 발굴 등으로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는데도 정부가 현 정권 내 완공을 고집하는 무리수를 두는 과정에서 일어났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종로구의 공공건축 등을 심의하는 도시공간예술위원장인 건축가 승효상씨는 14일 "(지난해 초 도시건축공동위원회)심의 당시 위원들은 물론 주 설계자인 민현준 교수(홍대)조차 공기(工期)가 촉박하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위원회 특성상 공기를 이유로 허가를 부결시킬 방법이 없어 조건부 재심의 하도록 했고 이후 승인할 때도 '공기가 짧아 위험해 보이니 적정한 공기를 확보할 것'이란 조건을 달아 통과시켰다"고 덧붙였다.
설계자 민 교수도 지난 3월 건축전문지 기고에서 "문화재 심의를 받을 때 공정을 총괄 감리ㆍ감독하는 CM사(한미글로벌)가 재심에 들어갈 변경 도서를 직접 수정해 제출하는 어이없는 일을 당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이슈가 문화재 심의였지만 실제 내용은 빠른 공사가 가능하도록 지하 전시장의 빛 구멍들이 있어야 할 공간에 화장실을 설치해 막았다고 지적했다. 또 "그들(CM사)의 목표에 미술관의 공기 단축과 공사비 절약은 있어도 품격은 없다"고 비판했다. 이종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는 "예술의전당도 전두환 정권 때 임기 전에 마치려고 애를 썼는데 그보다 더 심한 경우"라며 "시공에만 적어도 3년은 들여야 하고 개관까지 총 40개월 정도는 잡았어야 할 공사"라고 말했다.
서울관 공사는 2009년 1월 15일 이명박 대통령이 건립 계획을 발표할 당시부터 "리모델링 설계를 맡겨 2012년 준공"(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공언한 사업이다. 하지만 철거 과정에서 발견된 종친부(조선시대 왕족 관련 업무 맡은 관청) 유적 보존 문제를 두고 시간을 허비해놓고도 "20개월" 공사로 '임기내'(내년 2월 준공) 마친다는 공기에는 변함이 없었다. 터 발굴이나 지표 조사도 전인 2010년 8월 설계 당선작을 결정한 것도 앞뒤 뒤바뀐 무리수라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윤남순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운영단장은 "조달청에 계약 의뢰할 때 공사기간을 내게 되어 있는데 전문인력도 부족해 CM사의 의견을 받아들여 충분하다고 합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공사를 따낸 GS건설은 "터파기 등 기초토목공사가 마무리된 후 건축물 시공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공사기간이)무리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한편 화재원인을 둘러싸고 화재로 숨진 인부 유문상(43)씨의 형 택상(49)씨는 14일 공사현장에서 "화재 당시 지하 2층에서 일하던 인부가 '지하 2층에 스티로폼, 우레탄폼 등 인화성 물질이 있으니 3층에서 하고 있는 용접 작업을 중단해 달라'고 말했다는 증언을 들었다"며 "공기때문에 따로따로 해야할 용접 작업과 단열작업을 동시에 감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공사인 GS건설 김세종 상무는 "인부들에게 용접을 맡겼다면 업무일지에 기록을 하는데 그런 내용이 없다"고 일축 했다.
이인선기자 kelly@hk.co.kr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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