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초, 종로 일대 벽과 버스 정류장에 나치 제복과 삽이 그려진 넥타이 차림의 이명박 대통령의 그림이 나붙었다. 올해 5월에는 수갑을 찬 채 29만원짜리 수표를 들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그림이 서울 연희동 일대를 장식했고, 6월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려진 독사과를 손에 든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의 얼굴이 부산 거리에 나부꼈다.
밤새 그 벽보를 갤러리가 아닌 거리에 전시한 이는 팝아티스트 이하(44)씨다. 최근 박근혜 후보 풍자 포스터로 선관위 고발을 당한 그는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상태.
"당시 벽보를 붙일 때 모여든 시민들의 통쾌한 웃음에서 현 정권과 정치인들에 대한 시민들의 염증을 피부로 느꼈다"는 그가 개인전 '쫄지마'전을 연다. 서울 동숭동 '벙커1'에서 13일 개막해 기한을 딱히 정하지 않은 채 한달 정도 이어간다. '벙커1'은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방송실 겸 카페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람보로 변신했고,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은 이소룡의 노란 트레이닝복을 입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터미네이터로, 세상을 떠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머리에 빨간 리본을 단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독재자를 의도적으로 귀엽게 표현해 조롱의 의미를 담은 이씨의 '귀여운 독재자' 연작이다. 총 11명의 독재자가 그려졌다.
국내 대학과 대학원에서 회화와 조소를 전공한 그는 1997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시사 만화가로 활동했다. 이후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났다가 다시금 순수예술로 전향해 미국과 한국에서 화가로 활동 중이다.
"미국엔 각 나라 대통령을 기이하게 그려 비판하고 풍자하는 작가가 많지만 한국은 여전히 그에 대해 보수적"이라는 이씨는 "지난 시절의 독재자들이 현시대에 여러 방식으로 회자 되듯이 나는 현재 자본 독재자들과 정치 독재자들을 풍자하는 것일 뿐"이라며 앞으로도 이 같은 작업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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